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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월드컵에서 6·2지방선거 읽기

월드컵에서 6·2지방선거 읽기
박 준 수 부국장 겸 정경부장


입력날짜 : 2010. 06.15. 00:00

6·2지방선거 열풍이 휩쓸고간 지 불과 열흘만에 거리에 다시 군중이 모여들고 있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2일 밤 한국의 태극전사들이 유럽의 강호 그리스를 상대로 2대0의 통쾌한 승리를 거둔 후 월드컵의 열기는 이제 한반도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다. 첫 경기가 열리던 밤 광주월드컵경기장에 2만명이 운집한 것을 비롯 서울광장 20만명 등 전국에서 100만명이 거리응원에 나섰다.
월드컵 축제무드가 한껏 달아오르면서 6·2지방선거의 후일담은 점차 사그라들고 당선자와 낙선자들이 내건 현수막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러나 6·2지방선거의 실루엣을 수면 아래로 밀어넣기에는 아직 이른감이 있다. 그것은 선거와 월드컵이 여러 측면에서 패러디(닮은꼴)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린다는 점에서 매번 같은 해에 빅이벤트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둘 다 사람을 한데 끌어모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번호를 달고 경기를 한다는 점도 똑같다.
골키퍼의 등번호가 대체로 1번이듯이 선거에서도 정권을 방어하는 여당의 후보가 1번을 달고 뛴다.
월드컵 경기가 항상 의외성을 동반하듯이 이번 지방선거 역시 민주당이 뜻밖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간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민주당은 선거기간 내내 천안함 침몰사고와 경선을 둘러싼 내부 불협화음으로 고전하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텃밭인 광주·전남에서조차 20년 일당지배구조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돼 무소속 후보들이 기세를 올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동안 말없이 지켜보던 민심은 맥없이 끌려가기만 하던 민주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호주TV는 한국과 그리스와의 경기전망에 대해 그리스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이에 아랑곳않고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결과 이정수와 박지성의 연속골로 2대0의 완승을 거두었다.
선거와 월드컵 모두 새로운 스타플레이어를 탄생시킨다. 광주에선 민형배 광산구청장 당선자, 최영호 남구청장 당선자 등이 스타로 떠올랐고, 전남에선 장성 김양수, 담양 최형식 당선자 등이 화제를 낳았다.
또한 월드컵은 광주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사상 최초로 4강의 위업을 달성한 곳이 바로 광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이번 월드컵에는 허정무감독을 비롯 박지성과 기성용, 김정우, 염기훈, 김영광 등 5명의 태극전사들이 광주·전남 출신으로서 맹활약하고 있다.
광주·전남이 선거혁명의 진원지일 뿐 아니라 월드컵의 역사를 새롭게 쓴 명당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이유다.
어쨌건 월드컵도 이제 초반이고 선거도 MB집권 중반을 달리고 있다. 한국팀이 16강고지를 넘어 4강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멀다. 선거 역시 곧 있을 7·28 재보선을 포함 아직 여러차례 반전의 기회가 남아있다.
중요한 것은 감독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경기가 잘풀리지 않을 때는 선수교체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듯이 국정운영도 선수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박(MB) 대통령은 14일 지방선거 결과를 반영하고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청와대 및 내각의 시스템과 진용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세종시 수정 문제가 국론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회가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해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한마디로 선수교체 카드를 빼든 셈이다. 선수교체는 한 경기당 3명까지 가능하다. 세종시원안수정, 4대강 사업, 그리고 남북관계가 교체대상이 아닐까 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반전(지방선거)에서 잃은 점수를 만회하고 후반전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과감하게 선수교체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민주당도 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전반전에 올린 득점을 후반전에 지키지 못해 역전패 당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상대편의 자책골로 앞서가는 상황에서 자칫 방심할 경우 뼈아픈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월드컵도 선거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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