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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무는 시간 저편에

저무는 시간 저편에


‘되돌아볼 수는 있으나 돌아갈 수 없는 게 여행과 인생이다’. 2년 전 스페인 여행에서 만난 가이드가 들려준 말이다. 그의 말처럼 여행과 인생은 한번 지나쳐가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늘 아쉬움을 동반한다.
필자도 어느덧 언론 인생의 끝자락에 와 있다. 30년 전 언론자유화의 시대적 열망을 안고 탄생한 신생 지방신문에 입문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짧지 않은 세월을 펜과 함께 살아왔다. 저무는 시간 저편에 가을 낙엽처럼 흩어진 수많은 인연과 사연들이 언뜻언뜻 강물의 은비늘처럼 반짝인다.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바라보듯 지나온 30년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30년 세월을 회고하면

 

지난 30년 기자생활을 되돌아보면 전반 14년은 ‘good time’이었고, 후반 16년은 ‘hard time’이었다. 신문산업이 부침하면서 한 배에 탄 나도 덩달아 굴곡이 많았다. 신문의 부침은 경제적 구조변화, 미디어환경의 변화, 지역시장의 변화가 주요 변동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뉴스시장의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모바일이 뉴스 소비의 중심 채널이며, 종이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뉴스를 모바일 환경에 적합하게 제작․공급해야 한다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 산업에 걸쳐 4차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있는 가운데 신문 등 미디어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은 초연결사회, 융복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미디어분야는 그동안 웹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변화가 진행돼 왔다. 그 모든 성과물은 지금 스마트폰에 집약돼 있다. 앞으로도 스마트폰이 그 중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과 친화적인 콘텐츠가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뉴스의 경우 신속하고 흥미적인 요소를 갖추돼 영상과 텍스트가 결합돼야 흡인력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뉴스시장은 이미 멀티환경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자극의 문제이다. 즉, 같은 팩트를 얼마나 수용자가 몰입하게 자극적으로 변환하느냐의 문제이다. 이와 함께 수용자와 커버리지의 초분할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기자상

 

기자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1993년 외근기자 초년병 시절을 잊지 못한다. 당시는 노동운동이 매우 치열했다. 노동운동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취재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광주지방노동청을 출입할 때이다. 한 번은 장애인 부부가 공사장에서 일한 댓가를 못받고 체불임금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해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어느 독지가가 그들 부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기자상은 먼저 깨어있는 시대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비록 소시민적인 삶을 살지만 생각은 사회를 바라보고 세상을 품에 안아야 한다. 그래야 문제인식이 생기고 실천에너지가 나온다.
둘째는 전문성 확보이다. 기자는 분석하고 비평하는 입장이다.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없이 달려들었다가는 창피사기 십상이다.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어떻게 전시회 기사를 쓸 수 있겠는가. 또 경제이론에 대한 지식없이 어찌 경제현상을 분석할 수 있겠는가.
기자는 이론 못지않게 현장감이 중요하다. 어쩌면 현장에서 있을 때 비로소 기자의 존재감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화재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기자와 소방서 기록에 의존해 쓴 기자의 기사는 전혀 다를 것이다. 현장은 가장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는 엄청난 긴장감 혹은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다.
그러나 먹물의 향기와 사색이 깃들면 더욱 좋겠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목적이 분명한 실용적 문장이다. 육하원칙의 경직된 틀안에서 건조하게 전개된다.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현장의 뜨거움을 식힐 수 있는 여백의 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감성을 끄집어내는 문학이다. 끝으로 자신의 콘텐츠와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관심갖는 분야를 선정해 독보적인 경지를 쌓아야 비로소 완성된 기자이다. 그럴려면 엄청난 내공을 쌓아야 한다. 기자로 살아온 30년을 정리할 때 결국 기자는 글로써 평가받는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칼럼을 통해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것과 의미있는 책을 출간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시집 5권. 일반저술 5권을 집필했지만 대표적인 저술은 아직 없다. 모든 것을 압축해서 가장 무게감 있는 책을 써볼 요량이다.
끝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 한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천년세월에 녹슨 침묵이/ 이끼처럼 깔린 저 길을/ 지나간 이는 누구던가/ 여기에 꿈결같은 첫 사랑을 놓아두고/오늘 늙은 염소 한 마리 끌고 가는/아, 바람이여/행려병자여...”(졸시 ‘소나무 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