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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겨울 묵시록

겨울 묵시록

 

눈보라 속으로 걸어보지 않고서는 겨울을 이야기하지 말자
걷다가 넘어져 눈 더미에 무릎을 꿇어보지 않고서는
겨울을 이야기하지 말자
참나무 등걸처럼 갈라진 손등으로 눈을 헤치며
세상 밖으로 길을 내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겨울을 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녀가 떠난 희미한 발자국을 더듬어
비탈진 눈길을 헤매다 어느 마을 불빛에
눈물을 닦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직 사랑이 여물지 않은 사람이다
겨울날 어머니의 상여행렬을 따라가다
눈보라에 가슴속 명치끝이 쩡쩡 울리는
얼음장 같은 설움을 부여안고
겨울언덕을 넘어보지 않은 사람은
새하얀 눈의 소복을 입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문풍지를 뚫고 달려드는 칼바람을 맞으며
녹슨 펜으로 꾹꾹 억누른 마음을
마분지 위에 한자 한자 적어보지 못한 사람은
겨울밤을 아직 다 지새우지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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