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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태극소녀들이 쏘아올린 '희망'

태극소녀들이 쏘아올린 ‘희망’
박 준 수 부국장 겸 정경부장


입력날짜 : 2010. 09.28. 00:00

지난 일요일 아침 17세 어린 태극소녀들이 전해온 승전보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처럼 긴 추석연휴를 늘어지게 보내고 나서 ‘이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지’라고 넋두리가 나오던 참에 날아든 낭보, 한국 축구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우승. ‘가을엔 그리운 사람이 찾아온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태극소녀들의 투혼이 일궈낸 짜릿한 승리가 온 국민들에게 환희와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아니 그 이상의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선물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TV에 방영되는 통쾌한 결승전 장면을 몇 번이고 보면서 ‘눈물’을 훔쳐냈다.
그 ‘눈물’의 대열에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내 딸 또래의 소녀들이 보여준 가슴 벅찬 쾌거라 감동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2학년인 딸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철부지로만 생각해서 늘 걱정이 앞서는데, 같은 또래의 태극소녀들이 당차고 야무지게 대한민국을 세계속에 우뚝 들어올린 장면을 보니 성큼 자란 딸의 모습이 새삼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고 2학년이면 너나 할 것없이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책과 씨름하는데 우리 딸에게선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다. 등교하는 평일은 다소 분주한 듯하지만 공휴일은 그야말로 태평이다. 늦잠자는 것은 기본이고 일어나서도 TV시청과 인터넷 서핑, 음악감상하느라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리많지 않은 것같다.
하도 걱정이 돼서 조심스럽게 “공부는 잘돼냐”고 물으면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식이다.
공부 이야기만 꺼내면 만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번 17세이하(U-17) 월드컵에서 태극소녀들의 당당하고 활달한 경기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누구나 공부를 잘하라는 법은 없다. 또한 공부가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가치있는 일들이 많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모든 가치기준을 성적에 두고 아이를 주눅들게 만드는 어른들이 어쩌면 철부지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보람있는 삶인지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게 부모의 진정한 도리라는 생각이다.
이번 태극소녀들의 우승도 “재미있게 즐기다가 죽어서 나오자”,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축구를 한다”는 신념으로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얻어진 결실이 아닌가. 턱없이 열악한 환경, 철저한 무관심, 동양의 여자축구 선수라는 편견속에서 아픔과 시련을 참아내며 역사에 남을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체력의 한계, 기술력 열세, 전술적 미숙 등 고질적인 약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조별예선 통과에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17세 어린 소녀들이 대한민국에 결과보다 더 소중한 ‘희망’을 안겨준 것이 우리의 감동을 배가시키며 눈물짓게 하는 이유인 것같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딸아이가 한국 여자축구팀이 우승했다며 활짝 웃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딸에게 “공부 때문에 너의 자존심과 웃음을 흐리지 않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자신감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길 당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극소녀들의 장한 모습을 통해 용기와 열정을 잃지않고 도전하는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국민의 타고난 저력은 은근과 끈기이다. 그래서 스포츠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드라마같은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스토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IMF를 극복했고, 미국발 금융위기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헤쳐나오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이 많다. 그러나 태극소녀들이 쏘아 올린 희망을 가슴에 품고 그녀들처럼 땀흘리며 전진한다면 저마다 나름의 ‘우생순’을 일궈낼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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