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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하철, 도시의 문화캡슐

지하철, 도시의 문화캡슐
박준수 광주매일신문 부국장

광주지하철이 개통된 지 어느덧 6년. 평동에서 소태동까지 1개 노선이 운행중이지만 하루 4만7000명이 이용하는 ‘시민의 발’이다. 일선 기자 시절 옛 전남도청앞 공사현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 갱웨이를 둘러본 기억. 그리고 개통을 앞두고 시범운행 중인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이 “마치 서울에 온 것 같다”며 신기해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대구, 대전 등 다른 내륙 광역시와 더불어 출발한 광주지하철은 6년의 연륜이 쌓이면서 첨단 교통수단뿐 아니라 문화수도 광주의 열린 문화공간으로서 시민 곁으로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장차 2호선 순환선이 건설되고 화순, 나주와 광역철도가 연결되면 광주지하철은 대중교통의 허브가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지하철 또는 도시철도는 그 도시의 일상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도시의 문화를 창조하고 담아내는 캡슐이다.
외국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속에 숨쉬는 역사와 문화, 낭만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필자가 유럽여행 중 타본 파리와 런던, 독일 프라이브르크의 지하철과 전철은 지금도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을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3년전 파리동역에서 내려 마주한 파리의 시가지 풍경은 초겨울의 실루엣이 짙게 깔린 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하철 연결통로 중 한 곳이 공사중이서 매표창구는 매우 혼잡한 가운데 흑인남자와 아랍계 남자가 자신의 전철표를 사달라며 손을 내민다. 보통 10매 묶음으로 할인된 가격에 사는 게 일반적인데 이날처럼 줄이 길게 늘어서는 날은 빨리 타기위해 다소 비싸지만 낱장표를 사는 사람이 있어 매매차익을 얻는다.
 개통된 지 100년이 넘은 파리의 지하철은 그 세월만큼이나 내부가 낡은데다 좁은 갱도와 희미한 불빛 때문에 우중충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벽에 붙은 화장품이나 패션광고 또는 문화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는 세련되고 화려해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파리의 지하철은 러시아워 땐 서울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지옥철'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벽면 곳곳에 '그라피티(graffiti)'라는 디자인된 글씨들을 목격할 수 있다.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이런 작품이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는데 대부분 암호처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저항의 외침'이 많다고 한다. 프랑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자신들의 억눌린 심경을 이렇게 표출하기도 하고 마약을 거래하는 은어로 활용되기도 한다.
 유럽 문화와 패션 1번지 파리의 지하철은 남성적인 이미지보다는 여성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널린 쓰레기와 개똥이 흉물스럽기는 하지만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애착은 예술의 도시 파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뒷받침하고 있다.
런던의 지하철도 파리못지 않게 많은 나이를 먹어 내부가 낡고 칙칙하다. 재미있는 것은 런던의 워털루 역명을 가지고 프랑스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등 연합군에 패한 악몽을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의 환경수도로 불리는 독일 프라이브르크의 전철(a tram)은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을 꼭 닮았다.
마로니에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을 따라 굽이치듯 흐르는 트램의 차창을 통해 바라본 가을풍경은 이방인에게 왠지모를 우수(憂愁)를 선물한다. 특히 중세풍의 오랜 건물이 즐비한 시가지 성문(城門) 사이를 관통하는 트램을 보노라면 뜻하지 않게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심장이 멎는다. 프라이브르크는 환경의 도시답게 시내를 이동할 때 대부분 트램과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도심 구간의 자동차 속도를 규제하고 있다.  
또한 지하철이나 전철은 그 친밀감 때문에 종종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유명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는 1948년 퓰리처상을 받았을 정도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지금도 뉴올리언스 시내를 누비면서 시민들과 외국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광주 지하철도 문화수도에 걸맞게 문화지하철을 지향하며 시민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개통이래 해마다 가을이면 ‘메트로 축제’라는 전국 지하철 최초의 시민문화축제가 열린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어우러져 지하철 예술무대와 문화센터, 메트로갤러리, 테마열차 등 광주지하철의 문화사업을 갈무리하는 대규모 문화난장이 펼쳐진다.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반공연과 전시를 중심으로 시작된 초기 볼거리 위주의 메트로축제는 이제 친환경, 에너지절약, 대중교통 활성화라는 공공성을 주제로 다양화하며 아시아문화수도 광주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다.
특히 올해 가을에는 광주비엔날레와 세계김치축제를 비롯 광주에 굵직한 국제문화행사가 잇따라 열려 지하철을 이용하는 외국인이나 외지인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광주의 색깔있는 문화지하철을 경험하면서 ‘창조도시 광주’의 진면목을 새롭게 발견하고 오래도록 추억으로 간직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