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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양동, 겨울풍경

양동, 겨울풍경

        

          -박준수

 

유년의 땅 양동, 1970년대

지금은 화석처럼 잠든 시간속으로

기억의 강은 흐른다

긴 골목길이 탄광갱도처럼 미로를 만들고

낮은 처마가 맞댄 집들에는

하루품삯 인생들이 굴딱지처럼 모여산다

마른기침소리가 흘러나오는 창호지 너머

병든 아버지가 새벽을 힘겹게 일어선다

리어카와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가

요란한 동네, 어머니도 담벼락에 기대인

리어카를 끌고 행상에 나가지만

가난은 단맛빠진 껌처럼 달라붙은 지 오래

그래도 희미한 희망 하나 

이곳 사람들의 언발을 녹이고

막걸리 한잔에 가슴밑바닥에 고인

진한 설울을 삭여낸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고 질경이꽃이

계절 끝자락에 시들어버린 희미한 기억속으로

아직도 그리운 얼굴 몇은 남아

겨울 찬바람 윙윙대는 옥상마다

빨래줄 가득 옷가지들이 펄럭이는구나

함께 골목길을 휘젖고 달렸던 친구들은

중년이 되어 어디론가 흩어지고

낡은 기와집들이 뿌옇게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겨울 한복판에서 재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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