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 (338) 썸네일형 리스트형 책 만드는 여인 책 만드는 여인 붉은 벽돌건물 책 제본공장에서 한 여인이 책을 묶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승용차 차창 너머로 바라보게 되었다. 긴 머리가 허리춤까지 내려온 이 여인은 청바지에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열심히 밴딩 머신으로 책을 묶고 있었다. 더운 여름 날씨에도 아랑곳않고 묵묵히 일하는 장면이 마치 꽃다발을 엮는 플로리스트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인의 분주한 손길은 책의 향기와 더불어 어느덧 내 마음 속 깊이 활짝 장미꽃을 피우고 있었다. 잠시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한 여인의 실루엣은 첫 사랑 그녀 같았다. 가을의 여로 텃밭의 이름모를 꽃 텃밭의 이름모를 꽃 동네 골목을 산책하다가 텃밭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보았다 화초들 사이로 수줍게 고개 내민 진홍빛 꽃잎 새삼스레 꽃이 피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그가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알고 싶다 분명 누군가가 내게 보낸 선물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꽃말은 무엇일까 꽃을 아내로 삼은 어느 시인처럼 그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에게 말을 걸고 싶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남자가 나이가 들면 남자가 나이가 들면 거울을 자주 본다 흰 머리카락이 걱정스러워서가 아니라 파마가 잘 나왔는지 보는 것이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주방에 자주 들락거린다 술 마신 후 타는 갈증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치마를 입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피부과엘 자주 간다 얼굴에 핀 검버섯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쌍꺼플 수술도 하고 눈썹문신을 그리기 위해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외출한 아내를 학수고대한다 밥 차려주기를 기다려서가 아니라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자주 간다 술안주를 사러가는 것이 아니라 반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서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아내 바라기’가 된다 궁한 용돈을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나 나비처럼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까.. 가로수(수정) 가로수 박준수 도시의 외로운 파수꾼, 가로에 홀로 서 있는 나무여 지나는 행인들 아무도 눈길 주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다려온 나무여 가을날 낙엽을 모두 떠나보내고 기다림이 깊어 검붉은 등걸로 푸른 하늘 향해 목울음 우는 사슴처럼 뿔이 뻗은 가지들 겨울에는 하얀 눈을 층층이 얹고서 따뜻한 손길 내밀어줄 나무여 봄이 오거든 수줍은 나에게 연한 미소 한번 띄워 주렴. 경영학박사, 아시아서석문학등단, 시집 ‘들꽃은 변방에 핀다’ 외 5권, 전 광주매일신문 대표이사 역임 잔설 잔설 나는 간혹 그 겨울을 추억한다 외딴 시골 산비탈에 잔설을 슬픔처럼 부려놓고 내 갈비뼈를 빠져나간 바람이 새떼를 몰고 유령처럼 빈 들판을 떠돌던 그 겨울을. 가로수 가로수 도시의 외로운 파수꾼, 가로에 홀로 서 있는 나무여 아무도 눈길 주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다려온 나무여 가을날 낙엽을 모두 떠나버리고 기다림이 깊어 목마름으로 사슴처럼 뿔이 뻗은 가지들 겨울에는 하얀 눈을 층층이 얹고서 따뜻한 손길 내밀어줄 나무여 봄이 오거든 수줍은 나에게 연한 미소 한번 띄워 주렴. 낙엽의 서 낙엽의 서 가을 언덕을 제 홀로 가는 길손이여 지난 계절의 구멍난 상처를 안고 작별하는 저 발걸음 사이로 지나온 날들 노을에 물든 마음이 울고 있다 여기저기 저자거리 바닥에 떨어지는 남루한 편지들 유령처럼 내가 밟았던 노을을 행인들이 저마다 붉은 사연을 보듬고 바스락 스러진다 가을 언덕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 누군가 언덕에 또 한 굽이의 생애를 각혈한다. 이전 1 ··· 5 6 7 8 9 10 11 ···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