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을 퇴고하며
젊은 날을 퇴고하며 박준수 아주 오래 전 소년시절을 회상하면, 겨울 홑겹 야윈 햇살에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보석처럼 반짝이듯 한 자루 녹슨 펜으로 나의 영혼을 투명하게 깎아보고 싶었다 골방에 숨겨둔 도색잡지를 훔쳐보듯 남몰래 충장로 서점을 드나들며 외국번역 시집을 사모으는 게 취미가 되었다 키이츠, 셀리, 바이런, 워즈워드, 릴케 등등 그 시집들은 늘 우울했던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천국, 태양, 바다, 대리석, 천사, 여인, 별자리..... 이국적인 이미지와 환상적인 묘사는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비현실적이며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몽롱한 의식세계에 빨려들었다 그것은 경제학도였던 나에게 이브를 유혹한 선악과와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