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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00주년 ‘그날의 외침’ 깊이 새기자

3·1절 100주년 ‘그날의 외침’ 깊이 새기자

 

오늘은 기미년 3·1 만세 함성이 대한의 하늘에 울려 퍼진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3·1 만세운동은 한민족이 일제 식민통치 폭압의 사슬을 끊고자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국내외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거족적인 항일 운동이었다.
손병희·최린 등 천도교계, 이승훈 등 기독교계, 한용운 등 불교계가 독립 선언을 계획하여 2월 27일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어 종교 교단을 중심으로 미리 배포되었다. 그 후 고종의 장례일인 3월 1일 정오 서울을 비롯하여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 해방 운동이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은 광주·전남에서도 들불처럼 일어났다. 광주에서 3·1만세 운동은 1919년 3월5일 김철 등 17명의 인사와 기독교인들이 양림리의 남궁혁집에 모여 모의되었다. 당초 거사일은 큰 장날인 3월8일로 계획되었으나 준비차질로 실제 거사는 작은 장날인 3월10일에 일어났다.
작은 장터는 지금의 광주천 부동교 일대의 넓은 벌판이었다. 오후 2시 사직공원에서 울려퍼진 숭일학교 학생의 나팔소리를 신호로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의 학생과 동네 사람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농업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몰려나와 삽시간에 시위군중이 1천여 명에 달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열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광주·전남 곳곳에서 펼쳐진다.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는 1일 오전 11시부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민 수천 명의 목소리로 가득 찬다. 전남에서도 이날 출정식을 시작으로 오는 4월 11일까지 42일 동안 독립 만세 운동을 재현한다.
‘의향’을 자처하는 광주·전남인에게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감회는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이를 미래의 정신자산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시·도민들이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 외에 지역별로 열리는 행사에 직접 참가해 온몸으로 호국정신을 발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한말 호남의병과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역사유산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광주·전남이 의향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그날의 외침’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