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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겨울비

겨울비

 

겨울비의 투명함에 뼈속 깊이 묻어둔 울음을 듣는다

들판의 군상(群像)들이 떠나고 나뭇잎 벗은 숲길은 외로웠다

살다가 가끔은 무언가에 적셔지기 마련이지만

맨살에 와닿는 낯선 촉감은 부음(訃音)처럼 불길하다

가을의 끝자락에 덮쳐오는 외마디 비명처럼

왜 하필 도시의 후미진 골목을 배회하는 걸까?

노숙자의 침낭곁에 버려진 술병들의 허기진 입속으로

진솔한 슬픔을 핥는 혀를 입맞춤한다

온갖 것들을 비장한 무게로 짓누르는 낮은 음률은

여운(餘韻)이 아니라, 비수처럼 꽂히는 침묵이다

바람을 내치는 무수한 돌팔매

, , 바람의 목이 꺾이고

대신 그 자리에 참수되었던 나의 추억들이

비석처럼 서있다.

그렇게 유령처럼 겨울비가 내린 날

머 언 시간의 숲길은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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