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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몽골 시선

몽골 시선

 


 

―바람의 말

 

여행은 바람과 조우하는 일이다

하늘을 나는 연이 바람에 몸을 싣듯이

팽팽히 부풀어 오른 연은 하늘을 높이 날아 올라

세상의 끝 마루에 선다

그곳에서 비로소 한 마리 독수리처럼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초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바람은 간혹 감성의 시위를 당긴다

바람에 조준당한 나그네여,

그대는 이제부터

바람에 젖은 제비꽃과 민들레처럼

야생의 눈을 뜨고

바람의 말을 들을 수 있을 터이니

대초원을 떠도는 구름과 강물을 노래하라

석 달간 바람이 부드러운 낯빛을 띠는 동안

부지런히 말을 달려 바람의 땅, 대평원의 숨결을 호흡하라

바람의 날 것 그대로_.

 

―빗물의 노래

 

바람보다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이는 하늘의 빗줄기였다

빗줄기는 조용한 도시를 적시고

번화가 백화점을 오가는 사람들의 우산 위에

혹은, 희미하게 깜박이는 신호등 불빛에 어리거나

오랜 고궁의 뜰과 처마 끝을 타고 내려와

톨강으로 흐른다

메마른 대평원에 내리는 빗물은 축복이다

땡볕에 시들어가는 초원과 야생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목마른 말과 소와 양들의 젖을 풍요롭게 한다

초원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은

유년의 고향 들판을 떠올린다

그리고,

팝송 ‘the river in the pines’을 들려준다

초원에서 만나는 빗줄기는 추억의 강이 되어 흐른다.

 

―초원의 울림

 

 

게르에서 깨어나 바라본 새벽 초원은

거친 판화처럼 살풍경이다

게르의 희미한 등불이 미명을 밝히고 있다

푸른 하늘과 푸른 초원 사이로 구름이 몰려 온다

낮고 느리게 흐르는 톨강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린다

게르 캠프를 둘러싼 철조망 너머로 바람이 분다

성난 바람결에 주변 풀들이 일제히 갈기를 세우고 있다

티벳 어느 고원에 선 듯 삭막하고 고독해진다

철조망을 넘어 가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원시의 자연이 서로 서로 부딪혀 만들어낸 풍경은

아이러니하다

날 것들의 울림이 그대로 통곡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별들의 속삭임

 

게르 캠프의 하늘 위로

하나 둘 별들이 나타난다

지상의 집들이 불을 켜듯

저마다 촉수를 높이고 자리를 잡는다

별들도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일까

달 가까이 별 하나가 나오더니

그 주변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온 하늘이 별밭을 이룬다

하늘도 별도 낮게 내려오는 밤

유년 고향집 툇마루에서 바라본 별자리 모습은

그대로인데

무수한 별들 가운데 어머니, 아버지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밤은 유난히 바람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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