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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광주역 아시아문학축제’를 열자

칼럼- ‘남광주역 아시아문학축제’를 열자

 

 

경전선 시작점인 남광주역이 폐역된 지 올해로 만 20년이 되었다. 남광주역은 도심을 관통하는 선로를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2000년 8월 10일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얼마 후 역사마저 철거되었다.
현재는 광주역에서 동성고 입구에 이르는 8.1㎞ 구간에 푸른길공원이 조성되어 남광주역 부지에는 기차 카페와 쉼터가 마련돼 옛 추억을 환기시킨다.
비록 지금 역은 사라지고 없지만 부근 남광주시장이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남도인의 애환어린 기적소리

 

이처럼 남광주역이 기능을 잃고 공간적 변화가 일어났어도 여전히 과거의 시간중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역이 갖는 장소성 때문이다. 장소성은 인간의 경험의 산물이며 체험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남광주역은 광주-여수간 철길이 완공된 1930년에 영업을 시작해 2000년 8월까지 70년간 남도인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쌀과 석탄을 실어 나르고 해방 이후에는 이촌향도의 길목이 되었다. 또한 70~80년대 산업화시대에는 광주로 통학하는 학생들의 이동 수단이자 남해의 푸성귀와 해산물을 싣고 와 남광주시장에 파는 아낙네들의 숨결이 서려있다. 말 그대로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철길이다.
이처럼 민초들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남광주역은 현실세계를 떠나 어디론가 향하는 기적소리와 공명을 이루며 사람들의 정서에 낭만적인 장소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남광주역은 문학의 소재나 배경으로 곧잘 등장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이다. 간혹 이름이 비슷한 남평역이 사평역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실제 모델은 남광주역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 시는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쓸쓸한 기차역 대합실의 정경을 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추억, 아픔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서민적 정서 때문인지 이 시는 ‘국민의 시’라 할 만큼 낭송가들로부터 꾸준히 애송되고 있다.

 

광주다운 문화콘텐츠 만들자

 

남광주시장 입구 도로변 한 켠에 ‘남광주역에 나는 가리’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남광주역이 폐쇄되고 2년 뒤 2002년에 광주 동구청에 의해 건립되어 오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붙들고 있다. “븣/광주의 새벽을 여는 /남광주역에 나는 가리 /삶의 질곡을 푸는 /시골할매들의 /먼 숨결소리라도 들으러”. 둥근 바위에 새겨진 시의 주인은 김용휴 시인(77)이다. 그는 술이 고픈 날이면 이곳을 찾아 허름한 목로주점에 앉아 새벽녘까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남광주역의 정취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이 시는 가수 주하주씨가 곡을 붙여 구성진 가락으로 재탄생돼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이처럼 남광주역은 많은 추억과 노스텔지어가 스며있는 장소로서 풍성한 문학적 모티브를 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장소성과 문학작품을 엮어서 ‘남광주역 아시아문학축제’를 열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일으킬 수 있다. 기존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연극,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시킬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철도문학의 발신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광주천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학강철교에 열차 모형을 만들어 설치하고 밤에는 LED조명으로 열차가 달리는 장면을 재현한다면 새로운 명물로 탄생할 것이다.
광주는 아쉽게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면서도 광주의 혼과 숨결이 꿈틀대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광주다운 문화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남광주역 아시아문학축제’가 그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