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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고진감래(苦盡甘來)이네”.

최근 필자의 대표이사 선임 소식을 들은 친한 정치인 한 분이 축하 전화를 걸어 들려준 말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이 사자성어는 일상 속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듣는 순간 가슴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그 정치인은 나와 동갑으로서 30대 젊은 시절부터 인연이 있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터였다. 그동안 열악한 지역언론 환경에서 분투해온 내가 마침내 CEO의 자리에 올랐으니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뻤을 것이다.

내가 32년 언론생활 끝에 영광스러운 최고경영자가 되고 보니 가장 먼저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추석이 다가오면서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나의 어머니는 지난 1992년 추석 전날 오후 아파트 입구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로 일주일간 병원에 계시다 끝내 운명하셨다. 지금도 그 순간은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회사에서 당직 근무중에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듣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에 달려가보니 어머니는 두 눈을 감고 말문을 닫은 채 누워계셨다.

의사는 응급진단을 해보더니 종합병원으로 급히 옮기라고 했다. 그러나 종합병원에서도 회생가능성이 희박하니 집으로 모셔가라고 떠밀었다. 집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기다렸는데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가던 당신의 몸이 온기가 돌면서 얼굴에도 화색이 역력했다. 우리 가족은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의사는 일시적인 현상일뿐 상태가 호전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어머니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나는 퇴근 후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병실복도에 돗자리를 펴고 대기하고 있다가 간호사의 부름이 있으면 들어가 거들어줘야 했다. 새벽 한밤중 간호사가 보호자를 찾을 때마다 임종시각이 다가온 줄로 생각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나는 병원 부속 예배당에서 어머니의 고달픈 영혼을 위로하면서도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는 그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계시다가 아무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한 많은 세상을 뜨셨다. 당신의 나이 고작 56.

어머니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비통했다. 장례기간 중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형제들 우는 모습을 보고 서로 울곤 했다. 그리고 한동안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신 꿈을 꾸고 기뻐하다가 깨고 보면 허탈했다.

누구나 가족이 죽음을 당하면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경험한다. 더우기 나의 어머니는 누구 못지않게 기구한 생애를 살다 가셨기에 그 그리움과 회한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어머니는 스무살 때 중농집안에 시집오셨으나 빚보증에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병고가 겹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어린 자식들을 등에 업고 행상에 뛰어들었다. 당시 196070년대 초는 돈이 귀해 물건값으로 쌀, 보리 등 곡물을 받았는데 그것을 머리에 이고 수십리 길을 걸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1970년대 초 광산구 비아에서 마지막 농사를 처분하고 광주로 올라와 양동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다가 이듬해부터 대인시장에서 20여 년간 조기장사를 하셨다.

어머니는 거의 평생 동안 명절을 제외하곤 눈비 가리지 않고 새벽 통금이 풀리는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도매시장에 나가셨다. 그리고 물건을 받아두었다가 집에 오셔서 아침을 들고 나가 하루 종일 남의 가게 한편에서 좌판을 지키다가 밤늦게 오시곤 했다. 사고 당일에도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가셨다가 변을 당하셨다.

나는 사고나기 며칠 전 시장에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어머니하고 불렀는데 알아채지 못하고 가시던 그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어머니의 삶이 너무 억울해 몇 년 후 묘 앞에다 시비를 세워 드렸다.

당신의 쉰 여섯해 삶/ 눈발같이 허공에 졌어도/ 티끌세상 연꽃처럼 웃으시며/ 넓으신 품안 다섯남매 고이 기르시니/ , 가엾는 사랑/ 비록 몸은 한줌 흙으로 누우셨어도/ 크신 은혜 별처럼 빛나이다”.

이 순간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무쪼록 어머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처럼 옥황상제의 딸로 천상에서 영화를 누리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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