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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과수원의 추수

과수원의 추수

 

 

과수원에서 과일만 재배하는 것은 아니다. 감나무와 복숭아나무 군락 사이로 군데군데 빈땅이 있어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우리과수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일부는 마을 주민 소유의 땅이어서 다양한 작물이 경작되고 있었다. 밭갈이는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가 쟁기를 가져와 한나절 품을 판다. 우리집은 소를 키우지 않았으므로 쟁기질 하는 모습이 매우 신기했다. 더러 밭갈이를 끝낸 후 쟁기를 헛간에 놔두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그 쟁기에 올라타 신나게 놀곤했다.

계절마다 밭에는 갖가지 작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봄에는 보리밭이 파릇파릇 푸른기운이 넘실거리고 여름에는 오이, 가지, 그리고 참외와 수박넝쿨이 자라난다. 가을에는 하얀 목화꽃이 눈밭을 연상케하고 조와 옥수수가 큰 키를 자랑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고추며 오이, 가지와 같은 반찬거리를 따오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이 잦다. 나는 이들 작물을 순회하면서 설익은 속살을 훔쳐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에 유쾌한 나들이가 기다려진다. 오이나 가지를 따러갈 때 참외나 수박밭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때 밭고랑 넝쿨 사이로 탐스럽게 몸집을 키운 녀석들을 발견하게 된다. 게중에 쓸만한 덩이를 골라 한입 시식을 해본다. 수박의 경우 박치기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어린 수박 한덩이를 골라 내 머리통과 세게 부딪히면 퍽 소리와 함께 부숴진 조각마다 붉은 속살이 얼굴을 내민다. 아직 당도가 차오를 만큼 충분히 숙성되지는 않았지만 싱싱한 과즙은 그 자체로 상큼한 미각을 느낄 수 있다. 잘못 골라 노르스름하게 미숙성인 경우 고구마밭으로 내동이치면 그만이다. 그렇게 악동의 행적은 아무도 모르게 미제사건으로 묻히게 된다.

여름날 보리를 수확할 시기에는 우리집도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비록 재배면적이 작아 수확량이 많지 않지만 추수를 해야 하므로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다. 이때 평소 보지 못하던 낯선 기계들이 마당 한 구석에 진열된다. 발동기와 탈곡기이다. 탈곡기는 발을 이용해 사람의 힘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발동기를 연결해 작업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보리탈곡기는 원통형 표면에 역V자 모양의 굽은 철사가 촘촘히 박혀있어 회전을 하면서 보리알곡을 떨궈낸다. 다음날 이 낯선 기계들은 긴 갑바줄로 연결되어 굉음소리를 내며 탈곡을 시작한다. 발동기는 기차 바퀴처럼 생긴 모양새도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연기를 내뿜으며 내는 소리 또한 크고 요란해 심장을 뛰게 한다.

발동기가 쾅쾅쾅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사이 갑바줄로 연결된 탈곡기는 위~윙 위~윙 소리를 내며 보리짚단에서 보리와 짚을 분리해낸다. 두어시간 탈곡을 하는 사이 사람은 물론 집마루와 마당도 온통 뿌연 먼지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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