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룡산성은 어떤 곳인가>
통일신라 호족 박영규 장군의 해상활동 거점
방어와 치소기능...박영규 배향한 해룡산사 18세기까지 존재
순천시 해룡산성 일원은 통일신라말 고려초 호족 박영규가 해상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세부적인 위치는 순천시 홍내동, 내동, 통천마을 일대이며 순천만 초입에 해당하는 곳이다. 현재 산성 유적 주변으로 평지가 형성되어 농지로 사용되고 있으나 예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해룡산성은 해발 76.1m 망월산이 정상부를 이루며 주변의 낮은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성하였고, 내부는 평지와 구릉을 형성하고 있어 평산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평산성은 일반적으로 방어기능과 행정적 기능을 가진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까지 육안으로 확인된 체성은 성의 북벽과 동·서벽 일부만 남아 있으며 성의 남쪽 부분은 내동마을 등 마을 형성으로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다.
2002년 순천대박물관이 시굴조사한 결과 2번에 걸쳐 축성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제1차는 순수판축기법으로 축성되어 백제시대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2차는 기단석축이 있는 판축토성이었으며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전기에 증축된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유물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 시기의 기와, 토기, 자기류 등이 다수 출토됐다. 기와에서 ‘좌관초’, ‘우관초’ 등 명문이 확인됐다.
1618년 이수광이 쓴 ‘승평지’ 인물편에는 “박영규는 견훤의 사위이다. 죽어서 해룡산신이 되었다”란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승평지’ 사묘조에서 해룡산사에 대해 ‘인물조 아래를 보라’고 적고 있다. 이로 미루어 해룡산에는 박영규를 배향하는 해룡산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룡산사는 고려중기인 11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 정부에서 인정하는 공적인 제사로서의 지위는 왕조가 바뀌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해룡산사는 1729년 신증된 ‘승평지’를 끝으로 문헌에서 자취를 감춘다. ‘강남악부’(1784)에서 사당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엽에 신사가 없어지고 제의도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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