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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9)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9)

 

대학생들이 노래와 춤으로 젊은 열기를 발산하는 시끄러운 소란속에서 쪽잠으로 긴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대합실은 어젯밤의 어수선한 무대에서 다시 평상시처럼 승객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성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워 몸은 피곤함에 젖어있었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 때문인지 마음은 가벼웠다.

우리는 우선 호텔 방부터 잡기로 했다. 몇 군데를 알아보았으나 낮 12시 체크아웃 이후에 오라고 했다. 하는 수없이 어젯밤 지나왔던 골목길을 다시 떠돌며 시간을 떼워야 했다. 골목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의 행렬이 모여들었다. 마술하는 사람, 판토마임하는 사람, 커다란 첼로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등등 길거리 무대가 하나, 둘 막을 올렸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작은 카페테리아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커피와 빵을 주문해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이어 낮 12시가 되자 호텔 순례에 나섰다. 다행히 한 곳에 빈방이 있어서 예약을 했다. 여럿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아마도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한 방인 거 같았다. 호텔 예약을 하고 나니 마음 한 켠에 매달려 있던 근심이 사라진 듯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연극 한편을 보기로 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그 무렵 아비뇽에는 세계연극제가 열리는 중이었다. 여기저기 포스터가 나붙어 있었는데 게 중에는 한국 극단의 초분공연도 있었다. 그녀는 포스터를 보면서 어느 연극 하나를 골랐다. 극장은 대부분 소극장들이었는데 가까운 곳에 극장이 있었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표를 구입해 극장에 들어갔더니 좁은 객석이 관객들로 가득했다. 막이 오르자 무대배경은 궁정으로 바뀌고 옛 궁정시대 귀족복장을 한 여성들이 연기를 시작했다. 대사가 불어인지라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무성영화를 보는 듯 했다. 그렇지만 대충 줄거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궁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거 같았다. 스토리는 모르지만 연기자들의 몸동작과 대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몰입이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연극관람을 마치고 나니 어느 새 성안은 한 밤중이었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피곤한 몸을 누이고 금새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