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와 명품 신드롬
입력날짜 : 2007. 07.24. 00:00
박준수 부국장대우 경제부장
전 광주비엔날레 감독 내정자 신정아씨의 '가짜박사' 파문이 칠월 땡볕만큼이나
우리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메가톤급 태풍을 몰고온 장본인은 홀연히 미국으로 출국해버린 채 그녀의 마법에 홀린 광주비엔날레재단만
무슨 큰 죄를 지은양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그녀의 행적을 보면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극적이면서도 아리송하다. 미국 캔자스대학 3년을 중퇴하고 국내 한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가 몇년후 세계적인 미술축제의
감독으로 데뷔하는 엄청난 신분상승은 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이 믿기지 않은 일이 문화수도 광주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물론 시민들도 신정아가 펼쳐놓은 마법의 성에서 풀려나오지 못한 채 깊은
혼돈속에 빠져 있다. 광주비엔날레 이사진들은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책임소재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다른 것같다. 이는 이사 수가 너무
많은데다 의사결정과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데 기인하지 않을까?
지역미술계는 이번 신정아 파문의 원인 분석을 놓고 관료주의 행정과
시스템부재를 주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아울러 이사진의 개편과 내부개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신정아가
우리사회를 향해 펼친 '가짜' 퍼레이드는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참사와 마찬가지로 제어되지 않은 욕망과 절차무시(due process of
law)가 얼마나 큰 재앙을 낳는 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경고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성수대교의 붕괴는 성장제일주의와 '빨리빨리'문화가 낳은
인재라면 삼풍붕괴는 무분별한 확장과 증축 등 적법절차를 무시한 결과이다. 반면 신정아씨의 '가짜박사' 파문에는 적법절차의 무시와 함께 최근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명품신드롬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정아의 신데렐라 탄생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사회에 확산돼
있는 맹목적인 명품선호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는 서울대중퇴와 미국 캔자스대졸업, MBA취득에 이은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예일대 박사로
완벽한 짝퉁 명품학벌을 만들어 미술계에 자신을 마케팅했다. 그리고 이러한 명품마케팅은 적중하면서 그녀를 미술관 큐레이터에서 대학교수로 그리고
세계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그녀는 명품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광주비엔날레에 제출한 이력서에
우수(honour)졸업생, 수석(chief) 큐레이터 등 실제 존재하지 않는 명품타이틀을 만들어 과대포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짝퉁명품 마케팅은 또한 최소한의 검증과정마저 무력화시키면서 타겟을 명중했고 자칫 광주비엔날레를 송두리째 거덜내는 국면으로 발전할 뻔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신정아 해프닝은 구찌, 루이비똥, 버버리 등 그 이름만으로도 혹하는 우리의 일그러진 내면세계를 들춰낸 서글픈 자회상이다.
그러나 명품선호의식은 이미 우리사회 깊숙히 퍼져 하나의 신앙으로 굳어져 가는 느낌이다. 백화점 매출을 보더라도 일반 소비제품은 감소세를
보인데 반해 유독 명품매출은 신장세를 보여 매출부진을 만회하는 효자품목으로 대접받고 있다. 뿐만아니라 요즘 나오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무엇이든지
'명품'을 달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도처에 명품이 널려있다. 명품시계, 명품구두 등 패션은 물론 아파트 광고마다 명품이고, 심지어 학원강의도
명품강사라야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한마디로 명품에 올인하는 사회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이번 '짝퉁
학위'사태를 전환점으로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내년 제7회 대회의 정체성을 보다 뚜렷히 하고 내실을 다져 세계미술시장에 한단계 도약하는 전람회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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