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과 혁신도시
박 준 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입력날짜 : 2009. 10.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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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가을빛이 유독 아름다운 요즘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이 푸른 하늘과 맞닿으며 한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농민들이 땀흘려 가꾼 농작물이 등숙기를 맞아 태양아래 제몸의 빛깔을 발산하는 결실의 계절. 쌀 등 모든 작물이 풍작을 예고하고
있지만 풍요로움에 마음이 넉넉해야 할 농민들은 도리어 속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다. 산지 쌀값이 농가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5일 기준 80㎏ 쌀 한가마의 시장가격(전국평균)이 14만7천116원인데,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 16만5천원에 비해 1만8천원이나 낮은
수준이다.
그동안 농자재와 인건비 등 생산비는 올랐지만 쌀가격은 떨어졌으니 애간장이 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쌀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미곡처리장(RPC)이 보유하고 있는 2008년산 쌀이 저가에 시중에 출하되는데다 금년산 햅쌀마저 생산비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하는데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따라 전남 시·군 농민들은 RPC를 상대로 조곡 한가마(40㎏)당 5만원 선급금을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고, 애써 키운 벼논을 트렉터로 갈아엎는 등 쌀값인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수매해 북한주민에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요구에 대해 정부는 최근 공공비축미로 11만톤을 추가매입키로 하는 등 수급조절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가격 안정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왜냐하면 쌀소비는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입개방으로 인한 국내 쌀 유통량은 늘어나고 있으니
일시적으로 일정량을 시장에서 격리시킨다 하더라도 수급불균형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쌀소비량을
늘리는 방안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쌀가공산업을 활성화시켜 소비자들이 쌀식품을 보다 많이 섭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마침 웰빙바람을 타고 쌀막걸리와 떡 등 전통먹거리에 대한 기호가 살아나고 있으니 정부가 팔을 걷어부치고 대책을 마련한다면
서구중심의 국민식생활도 바꾸고 농업도 살리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기대된다.
쌀값와 더불어 이 가을 지역민들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이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의 표류이다. 나주시 금천면, 산포면 일대 726만4000㎡ 규모로 조성중인 혁신도시에는 오는 2012년말까지 17개
공공기관이 이전하게 돼있으나 해당기관들이 부지매입을 미루고 있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원안수정’ 발언을 한 이후
정부의 기류가 원안수정쪽으로 모아지고 있어 혁신도시도 덩달아 축소 또는 변경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 소속 지역
국회의원들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한전은 올해 부지매입비용 169억원을 책정했다가 집행을 미루고 있고, 농어촌공사 역시 총 197억원의 이전
예산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부지매입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도시는 세종시 원안수정 여부에 관계없이 당초 계획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정치부장 세미나에 참석한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혁신도시는
계획대로 추진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필자의 생각에도 세종시 원안수정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마당에 혁신도시까지 건드려 지역민심을
들쑤실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참에 혁신도시 이전대상 기관들에게 확실한 이전 신호를 보내야 한다. 정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해당기관들이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위해 수조원의 사업비를 수자원공사에게 부담케 하는 상황에서
한국전력이 혁신도시 부지매입비를 불요불급한 예산이어서 집행을 미룬다는 것은 군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라는 게 지역민의 진솔한 독백이다. 이
가을, 서민과 힘없는 약자들이 취락을 이루는 지방에도 볕들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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