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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05~2010)

현대삼호중공업 10년의 드라마

현대삼호중공업 10년의 드라마
박 준 수 부국장 겸 정치부장


 

입력날짜 : 2009. 12.01. 00:34

 

 현대삼호중공업이 어제(11월30일) 제46회 무역의 날에 ‘30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광주·전남에 본사를 둔 기업체로는 최초의 경사이다. 30억불을 원화로 환산하면 3조4천여억원. 이는 지난 2007년 한 해 전남에서 생산된 농수산물 총 생산액 3조5천억원과 맞먹으며, 광주시 올해 예산 2조7천억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30억불 수출의 탑’을 쌓아올리기까지 현대삼호중공업이 걸어온 지난 10년의 발자취에는 불굴의 도전정신이 숨쉬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의 모태는 ‘不倒翁’으로 불리는 고 정인영회장이 평생의 염원을 담아 1996년에 설립한 한라중공업 삼호조선. 그러나 삼호조선은 곧이어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경영난에 봉착한다. 당시 한라중공업의 좌절은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호황을 구가하던 영암, 목포상권은 침체의 오랜 터널에서 신음했으며, 인근 하당신도시의 밤은 휘황한 조명이 꺼지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1999년말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을 하면서 정상화와 고속성장의 전기를 마련한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으로 주인이 바뀐 후 적극적인 영업활동과 대외신인도 급증, 때마침 불어온 조선시장의 활황 등에 힘입어 사세가 급신장한다. 설립초기 7척에 불과하던 수주잔량이 새출발 3개월여만에 70여척으로 늘어나며 재기의 닻을 올린 것이다. 이후 현대삼호중공업은 2004년 9월 영국의 오일 메이저로부터 LNG선을 수주하는데 성공했으며, 노르웨이 선사로부터 PCTC(자동차운반선)를, 프랑스와 스위스, 이스라엘 선사로부터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운반선을 수주하는 등 일반상선에서 고부가 첨단 선박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 조선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1천200톤 규모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의 탑재능력과 100만dwt급 선박건조가 가능한 초대형 드라이 도크, 육상건조로는 세계 최대급인 16만톤급 수에즈막스 탱커선박 건조가 가능한 건조설비 등 세계 최강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올해 현재 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잔량은 116척, 124억 달러 규모로 이는 2011년까지의 조업물량이다.
 이처럼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조선사로 거듭날 수 있는 원동력은 젊고 우수한 인력과 최첨단 설비이다. 종사자 평균 연령이 38세로 타 동종업계에 비해 7년 가량 젊다. 또한 가장 최근 지어진 조선사로써 3차원 입체설계 및 자동화 로봇도입, 컴퓨터 통합생산방식, 초대형 블록탑재 등 최첨단 자동화설비는 최대강점으로 꼽힌다.
 상생의 노사문화도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1992년 가동이래 매년 파업을 벌이는 등 극심한 노사분규사업장이었지만, 2007년 이후 3년연속 분규없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의 고속성장의 파급효과는 전남 서남권의 경제지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역할은 고용창출이다. 초기 3천300여명이던 근로자수가 지금은 지역 최대규모인 1만1천여명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임직원 및 사내협력사 직원, 그리고 대불산단 협력사에게 지급된 급여까지 합치면 1조원에 달한다. 또한 거의 15년간 분양률 50%를 넘지 못했던 대불산단은 현대삼호중공업의 협력사 유치와 전남도의 중소형 조선산업 클러스터 구축계획으로 부지의 대부분이 분양되었다.
 그 결과 이농현상이 가장 심했던 영암군 삼호는 지난 2003년 면에서 읍으로 승격됐으며, 목포 하당신도시는 다시 대도시의 번화가를 연상할 만큼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난 10년의 역사는 기업사상 유례가 드문 부활의 드라마다. 10년전 부도난 회사를 다시 살려내 오늘날 30억불 수출의 탑 수상이라는 영광을 일군 현대삼호중공업은 분명 우리지역 경제의 보배이다. 전남 서남권의 희망으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의 저력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