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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월정신으로 본 4·29 재보선

오월정신으로 본 4·29 재보선
박준수 경영사업본부장·이사

‘광주’에서 새로운 길을 찾자

‘광주’는 광장에서 꽃을 피운다


입력날짜 : 2015. 05.04. 20:28

세월호의 슬픔과 4·29 재보선의 격랑이 채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오월이 성큼 와버렸다. 그 사이 산하는 난만한 꽃들이 지고 연초록 신록이 생명의 기운을 한껏 내뿜고 있다. 오월은 뭐라 해도 ‘광주’에서 시작된다.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그곳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직도 ‘광주’를 폄훼하고 매도하고 저주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진실이 숨쉬는 한 그러한 외침은 한갓 악다구니에 불과하다.

35년의 성상을 헤쳐온 오월 그날, 우리는 다시 옷깃을 여미고 ‘광주’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광주’의 그날은 핏빛새벽의 깨어남에서 비롯된다. 독재의 서슬에 움츠린 채 숨죽이던 민중이 어둠의 사슬을 넘어 민주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스스로의 각성이었다. 목숨을 건 그 각성은 이제 보편적 시민의식으로 승화돼 시민공동체를 결성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민중의 힘은 그동안 민주당을 통해 사회변혁의 지렛대로 결집해 왔고 그러한 연대를 기초로 기꺼이 ‘텃밭’으로 제공되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탄생은 광주의 자궁을 빌어 잉태된 것으로 역사적 정당성과 시대적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윤장현후보가 초반 열세를 딛고 광주시장에 당선된 것도 시민정신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가해자에 대한 탄핵의 차원에서 민주당의 보루가 되어준 광주를 정치인들은 점차 자신들의 ‘안방’인양 착각하는 오만이 싹트고 있다는 느낌을 시민들은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텃밭인 광주 서구을과 서울 관악을에서 패배한 원인은 무엇일까. 야권분열 혹은 배신 때문인가, 후보자 경쟁력 탓인가, 재보선 특성상 중장년의 높은 투표율 때문인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 결과이지만 당내에 깃든 기득권 안주에 더 큰 패인이 있지 않은지 뼈아프게 되새겨볼 일이다.

‘광주’는 또한 대동세상의 어울림 마당이다. 시장아줌마들은 쫓기는 대학생들을 숨겨주고,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었다. 가게주인들은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가 하면, 의료인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고, 청년들은 치안을 유지했다. 폭동상황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점 약탈이나 절도같은 범죄행위는 없었다.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위로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때 펼쳐졌던 어울림 마당은 위기 때 큰 위력을 발휘한다. 광주가 중요한 선거마다 유독 표결집력이 높은 이유는 ‘광주’의 정신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내면의 신호를 감지하기 때문이다.

광주 서구을에서 무소속 천정배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영택 후보를 예상을 깨고 큰 표차로 승리한 것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천 후보는 출마선언 당시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로 험난한 길을 가는 듯 보였다. 명분도 승산도 전혀 보이지 않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의 외로운 분투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천 후보에게 사람과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다. 첫 여론조사에서 천후보가 조 후보를 앞지른 결과가 나오자 새정치 진영은 재보궐선거는 조직력 싸움이라며 문재인 대표를 앞세워 총력전을 펼쳤다. 그리고 막판에는 추월을 확신하며 기세를 올렸다. 내면의 신호를 보내는 광주시민이 지원하는 ‘시민후보’를 가벼이 본 것이다.

‘광주’는 광장에서 꽃을 피운다. 오월 전야 도청앞 분수대에서 열린 민주화대성회는 그 꽃봉우리이다. 암울한 시국을 관통하는 힘은 벚꽃처럼 흩어지는 낙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뭉텅이져 뚝 떨어지는 동백꽃에서 솟아난다. 광장은 소통의 장이자 상상력을 자극한다. 길과 길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짓는 곳이 광장이다. 그동안 우리는 광장을 ‘비밀정원’처럼 닫아 걸어놓았다. 30여년간 방치하고 열쇠를 땅에 묻어버렸다. 이제 다시 광장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광주·전남에 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소통을 위한 KTX가 개통되었고, 사람을 연결하는 빛가람 혁신도시가 활기를 띠고 있고, 세계를 연결하는 U대회가 개최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도 이제 ‘텃밭’을 넘어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아니, 어쩌면 벌써 ‘광장’으로 사람들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80년 오월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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