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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향광주, ‘밑둥’은 잘 있나

예향광주, ‘밑둥’은 잘 있나
박준수 경영사업본부장·이사

화려한 수식어 뒤편에 공허함이…

‘예향광주’의 브랜드가 튼실하려면


 

입력날짜 : 2015. 07.06. 20:34

 

세계대학생들의 스포츠 제전인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가 지난 3일 개막돼 열기를 내뿜고 있다. 연일 각 경기장마다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가 펼쳐지면서 지구촌의 시선이 빛고을에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2015 광주하계U대회는 문화를 접목한 ‘컬처버시아드(culture-versiade)’를 표방하고 있어 ‘예향광주’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광주시의 도시마케팅 전략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

언젠가부터 광주는 ‘예향(藝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시민들 역시 그 표현에 자긍심을 느끼며 예향인(藝鄕人)‘다움’ 혹은 예향인의 ‘끼’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70-80년대 사랑방이었던 다방에는 으레 그림이나 서예 한두 점 걸려있기 마련이었고, 석양빛이 자욱한 공원에는 육자배기 가락이 구성지게 흘렀다.

요즘에도 몇몇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다 얼큰해지면 가슴에 묻어둔 시 한 줄쯤 술술 풀어내는 낭만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과 달리 ‘예향광주’의 밑둥을 깊이 들여다 보면 어딘가 부석부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지역 문학의 그루터기부터 들여다보자. 1930년대 시문학파의 일원이자 ‘떠나가는 배’로 널리 알려진 용아(龍兒) 박용철, ‘견고한 고독’의 시인 김현승은 광주를 대표하는 작고문인이지만 이들을 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극히 빈약하고 문학정신을 계승할 기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용아기념사업도 지난해에야 광주로 이관돼 광산문화원 주관으로 백일장 등 관련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지만, 행사 개최로 그칠 뿐 문인들과의 공감대가 폭넓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관이 주도하는 행사로 전락, 문인들은 뒷전이다.

조태일, 이성부, 문순태 등 걸출한 문인을 대거 배출한 광주고등학교의 ‘광고(光高)문학관’은 전시관에 소장자료가 별로 없어 방문객들에게 충분한 문학적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아과 의사로서 평생을 문학에 헌신해온 손철 박사(1920-2009)의 경우 사후(死後)에 관리소홀로 귀중한 소장자료들이 고물상에게 헐값으로 넘겨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지역문학의 태동기 역사를 간직한 ‘전남문학’ 창간호는 소장가가 모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으나 분실된 채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영랑, 용아가 주도한 ‘시문학’ 3호는 원본을 확보 못해 영인본 발행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문학은 기록의 예술이자 당대의 시대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작가와 작품들은 마땅히 보존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특히 원로문인들에게는 평생동안 모아온 값진 자료들이 적잖을 것이다. 서재에 묵혀있는 ‘보물’들을 공적(公的)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예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역문인들의 작품을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공공도서관에 별도의 서가를 설치하고 시내 서점에도 지방문인 코너를 마련해 소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학뿐이 아니다. 미술분야도 뿌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미흡한 형편이다. 특히 원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 일례로 지역 미술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광주시문화예술상이 상금도 없이 달랑 상장 한 장만 수여되고 있다. 종전에 부상으로 2천200만원이 지급되었으나 선거법 저촉을 이유로 15회부터 폐지된 것이다.

다른 상과 달리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수여하는 상은 본래의 취지에 맞게 창작 장려금이 주어져야 한다. 상금지급이 어렵다면 작품구입 등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예술혼을 북돋워야 한다.

이와 관련 그동안 ‘무늬만’ 문화상을 수상했던 지역원로작가들이 집단적으로 상을 반납하겠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40대 한 연극인이 생활고로 고시원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근 광주시는 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 등 메가 이벤트에 집중하느라 ‘토박이 문화’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예향광주’의 타이틀이 세인이 주목하는 커다란 국제행사에서 반짝 내걸리는 슬로건이거나 선술집 한 구석에서 잠시 빛을 발하는 ‘여흥’으로만 맴돌아선 안 된다. ‘예향광주’의 브랜드가 튼실하려면 밑둥부터 웅숭깊도록 가꾸고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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