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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장인 어르신 떠나신 날

장인 어르신 떠나신 날

 

소리 없이 안개비가 4월 들판을 적시던 날
한 많은 세월이 홀연 강나루를 건너는 이승의 끝에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어 추억으로 인화하는 원추리 꽃
작은 몸속으로 밥 한 톨 넘기지 못하는
정지된 시간, 몸 밖으로 나와 안개비 따라
젖은 듯 젖지 않은 듯 살아온 인생
민들레 홀씨되어 월출산 자락을 훠이훠이 둘러보고
빈소에 주름잡힌 얼굴로 반기는 염화시중의 미소
쓰디쓴 세월을 태워내는 향연은 회상인듯
제단 아래 아득히 고인 고요의 허공을 지나는데
지방에 쓰인 당신의 이름 석자를 아시기나 할까
한 평생 지상에 머물던 몸은 혼이 되어
봉분 속에 외로운 섬처럼 저승의 시간을 기다리네
이제 낮과 밤, 봄과 겨울은 이승의 시간일 뿐
저승의 달력은 당신만 알 뿐
제삿날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약이 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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