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남창계곡에서
숲 속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마음 한 굽이만 살짝 꺾으면
나리꽃 피는 언덕길 보인다
경계 밖에 살다보면
매양 다녔던 길만 훤히 보이고
비켜있는 산속 길 부옇게 안개속이다
오늘은 바람을 만나 길을 나선다
예전에 다녀갔던 그 길을 따라
세월에 빛바랜 추억을 이정표 삼아
한 걸음 한 걸음 남창계곡에 오른다
물은 그대로 유유하고
삼나무는 변함없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텅 빈 입암산성엔 지키는 군사도 없이
허물어진 남문 돌틈 사이 푸른 이끼,
말없는 편린들만 남아 역사를 전한다
불현듯 쏟아지는 소낙비, 뇌성소리
산의 정적을 깨우듯 내 마음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