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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월의 함성은 저물지 않는다

오월의 함성은 저물지 않는다
박준수 논설위원


입력날짜 : 2011. 05.20. 00:00

봄과 여름의 점이지대를 완행열차처럼 흘러가는 5월은 그윽하면서도 깊은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들판에는 나무와 풀들이 신록의 푸르름을 더해가고 논밭의 청보리가 익어가는 축복의 시간이 간이역처럼 정겹다.
그 싱그러운 5월의 정점에 광주는 31년전 역사적 상흔으로 불면의 밤을 뒤척이며 가슴앓이를 해야한다. 그날 수많은 민주열사의 피어린 희생과 공포의 기억은 여전히 망월묘역에 만장으로 휘날리며 현재형으로 살아있다. 민주화와 정의실현을 외쳤던 오월의 함성은 31년 전과 다름없이 금남로를 뜨겁게 적시고 있다.
80년 오월 영령들의 값진 피의 댓가로 광주는 이제 세계속에 정의와 인권의 금자탑으로 우뚝 솟아 있다. 지구촌 한구석에 아직도 독재의 폭압에 신음하는 민초들의 희망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고 새로운 한 세대를 맞은 오월은 국내적으로는 아직도 미완의 등불로 흔들리고 있다. 민주화와 인간존엄을 회복하려는 순수한 저항이 정치에 오염되고 파벌에 왜곡되고 나약한 타협에 빛이 바래고 있다.
오월의 거룩한 생명존중과 나눔정신은 어느 누구도 훼손할 수 없고 덮을 수 없는 인간본성의 고갱이이다. 따라서 오월정신은 문명의 진화와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승화돼 역사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오월정신이 우리사회의 어둠을 밀어내는 세상의 빛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흔들림없는 대오로 역사의 중심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탱크와 총칼에 맞섰던 그날의 각오로 무장하지 않는 한 오월정신은 형해화되고 말 것이다.
이런 역사인식을 토대로 우리는 5·18 31주년을 기점으로 정신계승과 실천의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먼저 오월정신의 세계화를 위해 5·18 민주화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에 힘을 모아야 한다.
5·18기록이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여러 기관에 흩어져 보관중인 기록물과 자료들이 독립적인 ‘5·18아카이브’에 집대성돼 광주의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와 희생이 세계로 전해져 인권교육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오월 정신을 디딤돌로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이 견고하게 구축돼야 한다. 그리고 그 응집된 에너지로 내년 4월 총선과 연말 대선에서 희망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
최근 충청권 과학벨트입지 선정과 호남고속철의 저속화 및 호남광역경제권 사업 쪼개기 등 일련의 국책사업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호남고립화의 전조가 감지되고 있다. 국론분열을 일으키면서까지 과학벨트 입지선정에서 정략적인 선택을 한 것은 충청권을 껴안아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충청지역은 1987년 대선 이후 주요선거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당의 책임은 크다. 지난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36석의 거대정당에서 55석을 잃고 초라한 신세가 됐다. 여기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대선패배 이후 새로운 당 정체성 확립실패, 공천과정의 문제, 부적합한 대정부 이슈 등 내부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패인은 극심한 분열속에 각자도생의 기회주의가 내재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민주당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수권정당으로서 한발짝 다가가기 위해서는 오월정신에 입각한 뼈를 깎는 자기쇄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 단추는 인적쇄신이다. 국민을 감동시키는 변화의 몸짓만이 오월정신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고 호남고립을 푸는 단초가 될 것이다.
지역민심은 민주당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승리하려면 텃밭인 광주·전남에서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해 있다. 그 배경에는 광주·전남 현역 국회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노후화돼 있어 젊은층으로 세대교체하고, 중진 의원들은 살신성인하는 정신으로 용퇴하거나 수도권에 진출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18일 5·18민중항쟁 제3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5월 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을 어떻게 지켜가는지 오월영령들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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