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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 광주은행과 ‘향토은행’ 브랜딩

반백년 광주은행과 ‘향토은행’ 브랜딩


광주은행이 오는 11월20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1968년 11월20일 동구 충장로 5가 68-18번지 옛 중부지점에서 첫 업무를 개시한 날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전남 향토은행의 역사는 근 100년에 이른다. 지역 금융의 모태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  설립된 호남은행으로 볼 수 있다. 호남은행은 현준호를 비롯한 호남지역 선각자들이 외세로부터 민족상권을 보호하고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민족자본을 끌어 모아 만든 은행이다. 호남은행은 1919년 6월 현준호, 김성수, 김상섭 등 민족자본가를 중심으로 설립준비에 착수해 7월27일 발기회 총회를 가졌다. 발기인으로는 광주에서 정낙교, 지응현, 김형옥, 조만선, 최선진, 최종남, 최석휴, 주하영, 박하준 등이 참여했으며, 목포에서는 현준호를 비롯 김상섭, 차남진, 김원희, 김성규 등이 동참했다. 이처럼 호남은행 설립에 호남의 지주자본가들이 총망라된 데는 현준호의 부친 현기봉의 역할이 컸다. 또한 1919년 광주농공은행이 식산은행으로 흡수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은행설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향토은행의 뿌리는 호남은행

 

당시 호남은행에 참여하고 있었던 이들은 조선은행과 식산은행에 맞설 수 있는 조선자본가들을 위한 은행설립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였다. 호남은행은 은행원을 전원 조선인으로 채용하고 1920년 9월20일 업무를 개시했다. 호남은행은 개업 1년 만에 큰 성과를 올리면서 점차 순천지점(1922), 장성지점(1927) 등 점포를 확대해나갔다. 이어 1933년에는 동래은행을 합병함으로써 주요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한다.
호남은행 본점건물은 충장로 3가에 있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서양식 근대건물이어서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건물은 호남은행의 운명과 더불어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게 되는데 1942년 동일은행이 되었다가 1943년 10월1일 다른 민족은행과 함께 조흥은행의 모태가 되었다.
1955년부터 한국은행 광주지점이 사용해왔고 1976년부터 광주은행에서 인수해 사용되다가 본점이 금남로로 이전하면서 충장로 지점이 되었다. 필자는 1970년대 초 우연히 충장로에 구경나왔다가 대리석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옛 호남은행 건물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런데 광주은행은 금남로에 신사옥을 건립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옛 호남은행을 한국토지개발공사에 매각했다. 이어 다시 이화택시 대표 김상영씨 등 5명의 기업인에게 팔려 결국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호남백화점이 들어섰다. 
조흥은행은 나중에 신한은행에 합병되었는데 호남은행 시절 각종 기록과 자료들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은행은 근대 향토은행의 탯자리이자 본점이었던 옛 호남은행 건물을 매각한 것에 대해 몹시 아쉬워 하고 있다. 광주은행이 명실상부한 향토은행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브랜딩(branding) 작업이 필요하다. 


지역문화와 정체성 보존 중요


광주은행은 비록 호남은행보다 약 50년 늦게 출발했다 할지라도 향토은행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한 뿌리임에 틀림없다. 또 JB금융지주 김한 회장이 호남은행 설립에 참여한 김성수의 방계 후손이라는 사실도 상당한 인연이다. 대학의 경우 학제변경에도 불구하고 전신 학교를 설립연도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전남대 의대는 1944년 광주의전 설립을 개교 연도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이 중도에 체제변경과 관계없이 최초 개교 시점을 기원으로 삼아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광주은행도 지역금융의 맥을 잇는 차원에서 옛 호남은행의 유산을 물려받아 향토은행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향토은행 브랜딩’은 50주년을 맞은 지금이 적기이다. 우선 신한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호남은행 시절 각종 기록과 장부를 인도받아 ‘족보’를 소장해야 한다. 광주은행은 본점 내에 박물관이 있지만 향토은행 100년을 보여줄 만한 콘텐츠가 없는 실정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광주은행은 50주년인 올해 옛 중부지점 등 유서깊은 건물을 모두 매각한 상태이다. 향토은행의 존재이유는 지역경제가 원활하게 발전하도록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