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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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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겨울 사이 화엄사 봄과 겨울 사이 화엄사﹡ 회색빛 겨울이 떠나간 들판에 봄이 살며시 다가오고 있다 화엄사 경내에도 홍매화가 자주색 꽃잎을 피우며 세상 밖 봄 구경을 하러 나왔다 저만치 발걸음을 옮기던 겨울이 문득 옛 생각이 났던지 화엄사 마당에 서성거리고 있다 지리산 산봉우리는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다 하늘 가까이 설산이 전설처럼 아득히 가파르게 솟아있다 바로 턱밑에는 봄기운이 푸르게 감도는 춘산이 떠받치고 있다 산문은 봄과 겨울 사이에 경계를 이룬다 중생들이 부처님 안부를 물으러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각황전 옆 홍매화가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는다 겨우내 잠들었던 마음들이 독경소리에 눈을 뜨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 아래 봄빛이 눈부시다. ﹡화엄사-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번지에 위치한 화엄사는 서기 544년 연기스님..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얻으라 "너 자신에게 집중하고, 너 자신을 걱정하고, 너로부터 행복을 얻으라" 1)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 보다는 타인의 삶에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일종의 인생 관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남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남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남이 어떻게 구겨지는지..... 자신만의 가상극장에 객석을 차려놓고 관음증을 즐기고 있었다. 2) 많은 사람들이 남의 불행으로부터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심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퇴직하고 나니 평소 연락이 없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낙담해 있을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전화를 했을 터이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말은 정반대인 경우가 적지않았다. 3) 그간 살아오면서 남의 곁불을 쬐려는 무임승차자들을 종종..
물새떼 노니는 영산강의 봄 물새떼 노니는 영산강의 봄 "모래톱과 억새풀 군락이 작은 섬을 이루며 운치를 더한다 요즘 쉬는 날이면 집에서 가까운 영산강 상류인 풍영정천 강변을 자주 산책한다. 지난해 5월 광산구 우산동으로 이사온 이후 한동안 어등산을 등산하였으나 최근 인근에 새 아파트가 완공되면서 연결도로가 생겨 한결 가까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구간은 차도만 있을 뿐 인도가 없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게다가 철길이 나란히 지나가고 있어 비좁은 틈새를 가까스로 지나야 강변에 닿을 수 있다. 강변에 이르면 확 트인 공간이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듯하다. 흐르는 물길 사이로 양편에 둑길을 따라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주변이 아파트 숲이어서 산책로는 언제나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더러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두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아버지를 회상하며 아버지를 회상하며 -매일신문 원고 나의 아버지는 2014년 6월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4월에 태어나 젊은 시절을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 등 한국사회 격변기의 한복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배움이 적지 않았으나 일찍이 폐병을 앓게 되어 평생을 ‘한량(閑良)’으로 사셨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곧잘 집을 비우셨습니다. 과수원 양철지붕이 태양에 이글거릴 때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 아득히 걸친 읍내 신작로에는 아버지가 탄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가끔 장날이면 도회지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았습니다. 중절모에 코트 깃을 세운 신사 차림으로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오셨습니다. 과수원에는 어린 복숭아 열매가 열병을..
왜 은퇴자들은 산으로 가는가 왜 은퇴자들은 산으로 가는가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퇴직 후 산을 자주 오르고 있다. 대체로 집 근처 어등산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가끔 무등산도 오른다. 이전에는 퇴직하거나 실직한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오르거나 아니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오르른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그 입장이 되어보니 왜 은퇴자들이 산을 찾게 되는지를 나름 알것만 같다. 우선 퇴직을 하게되면 생활패턴이 갑자기 바뀌게 된다.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게 직장인의 일상인데, 이 루틴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 조직에서 벗어나 외톨이 신세가 되다보니 갈데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
여수 한려동 탐방 충무공의 정신이 어린 미항 여수의 중심 고풍스러우면서도 인정이 많은 포근한 동네 한려수도의 미항, 여수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한려동을 둘러보았다. 한려동은 행정동 이름이며, 관내에 법정동인 수정동과 공화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여수항의 배후지역으로서 오래 전부터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관문역할을 했다. 지리적 요충지역으로서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이 설치되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머물면서 왜적을 물리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과 가까워 수탈의 창구로 활용되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는 여수항과 여수역을 개설하여 철로와 배를 통해 쌀과 면화를 실어갔으며 어민들이 피땀 흘려 기른 수산물을 가져갔다. 또한 태평양전쟁 당시 요새로 쓰인 전적지와 여수세관, 동산동성당, 자산공원 등 근대화..
처갓집 풍경을 탐하다 흙집 뒤안에는 대나무숲, 곳곳에 손때묻은 추억이...... 마당에 서면 저 멀리 월출산, 가까이에 우람한 당산나무 추석명절을 맞아 영암 시골마을 처갓집을 다녀왔다. 결혼한 지 30년쯤 되니 이제는 처갓집이 내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처가에는 팔순이 훌쩍 넘은 장모님이 혼자서 오래된 흙집을 지키고 계신다. 몸집이 작고 키가 낮은 흙집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깊은 주름이 졌다. 10여년 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여 겉모양은 그런대로 멀쩡하지만 내부는 낡고 삐걱거린다. 그래도 그 좁은 둥지에서 6남매를 번듯하게 키우시고 한 생애를 무탈하게 지내오셨다. 나는 처가에 올 때면 집주변 이곳저곳을 둘러보곤 한다. 구석진 자리에 널려있는 옛 농기구들과 생활용기들을 보면서 진한 향수를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 뒤..
영산강에서 물고기를 방생하다 바위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 발견해서 방생...우리사회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우산동으로 이사온 지 4개월만에 영산강변을 걸어보았다. 그 전에 잠시 인도교를 걸어본 적이 있으나 이 때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중순이라 오래 걷지 못하고 잠깐 눈요기하는 정도였다. 때 마침 추석연휴를 맞아 서울에 사는 작은딸이 내려온 참에 아내와 함께 강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아파트에서 강둑까지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걸어가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좁은 농로를 이용해야 하므로 차와 접촉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차를 타고 가더라도 마땅한 주차공간이 없어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고민끝에 차를 가지고 가서 강둑 한켠에 요령있게 차를 세워두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차로 이동했다. 아파트에서 차를 타고 화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