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73) 썸네일형 리스트형 해남 두륜산 기행 해남 두륜산기행 (1992.07.12.) 1992년 7월 12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창밖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였다. 가랑비이기는 하지만 장마권의 영향을 받아 빗줄기가 계속될 것임은 분명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이고 있던 차에 따르릉 전화벨이 흠칫 남은 잠결을 거두어갔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길 떠나는 나그네가. 전날 회원들에게 배부한 산행계획서에 비가 오더라도 모이자고 메모를 해두었지만, 막상 비가 뿌려지니 나부터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갈피를 못잡고 있는데 목포에 사는 고규석 회원이 해남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갈 것이다’ 결단을 내리고 산행을 강행키로 했다. 오전 8시30분까지 터미널로 모이기로 했는데 한번 흔들린 마음을 추슬.. 봄 기차(수필) 봄 기차 코로나19 영향으로 계절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인지 봄이 더디 오는 것만 같다. 겨우내 회색빛으로 물든 도시 아파트에 갇혀 있다보니 코로나블루가 더욱 심해지는 듯 싶다. 어떻게 하면 봄을 먼저 느껴볼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기차를 타고 봄이 오는 길목인 남쪽으로 마실을 떠나기로 했다. 지난 주 일요일(3월14일) 오전 10시 경전선 열차를 타러 광주 효천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에는 이미 대여섯명의 승객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보니 대부분 60대가 넘는 중년들로서 부부동반 모임이었다. 아마도 학창시절 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봄의 낭만을 느껴보기 위해 나선 것 같았다. 열차 도착 시간에 맞춰 플랫폼에 나가니 얼마지나지 않아 경전선 열차가 3칸의 객차를 달고 .. 오색의 향연 과수원 오색의 향연 과수원 과수원은 만물이 쉴새 없이 움직이는 작은 자연계이다. 계절마다 화려한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작은 들풀에서부터 초록으로 물드는 들녘까지 물감을 뿌려놓은 듯 현란하다. 그 범주는 넓고 무한하다. 색의 군집을 통해 과수원의 비밀화원을 순례해보자. 색 가운데 흰색은 서민적이고 수수하다. 탱자울타리 사이 하얀꽃이 수줍게 피어 있다. 감나무 이파리가 제법 자라면 하얀 감꽃이 고개를 내민다.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감꽃이 진 자리에 감이 맺힌다. 그리고 논에 소금처럼 뿌려진 메밀꽃 역시 장관이다. 메밀 순을 따서 데친 후 된장을 버무려 무친 메밀나물은 입맛을 돋운다. 흰색의 백미는 겨울에 맛볼 수 있다. 밤새 내린 눈보라가 만든 설원은 그야말로 고요한 은세계이다.. 사라진 과수원(수정) 사라진 과수원 1993년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토지공사(현 LH공사)로부터 비아 과수원안에 있는 묘지를 이장해가라는 통지가 왔다는 것이다. 정부가 첨단단지로 지정한 광산 비아와 북구 삼소동 일대가 토지공사에 의해 본격적인 사업 착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보상작업이 마무리되고 원주민 이주가 이뤄진 상태에서 마지막 묘지이장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주말을 이용해 이장작업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약속한 날에 내가 살던 양3동 발산마을 아파트를 나서서 승용차로 비아과수원에 도착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먼저 오셔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과수원 현장은 이미 지장물 철거작업이 거의 마쳐진 상태로 허허벌판으로 변해 있었다. 탱자울타리도, 양철집도, 과일나무도 내가 뱀을 보고 줄행랑.. 시골 점쟁이 할머니의 예언 시골 점쟁이 할머니의 예언 사진설명=2003년 병영초등학교 입구에 서있는 병영성터 안내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나이가 60 고개에 접어드니 지나온 길이 드러난다. 그 길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한다. 사전에는 운명의 정의를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앞날을 결정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내가 운명 이야기를 꺼낸 것은 33년째 신문사에 종사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 운명의 힘에 의해 여기까지 이끌려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한 점쟁이 노파의 말 한마디가 그 운명적인 행로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것 같다. 그 점쟁이 노파를 조우하게 된 일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2003년의 일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인상(수정)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인상(수정) 우리세대에게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은 사회와의 첫 대면이라는 점에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나의 초등학교 생활 역시 아련하지만 절절한 기억들이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겠지만 나의 눈으로 바라본 초등학교 생활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본다. 1학년 때 기억은 입학식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반별로 다양한 색깔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내가 속한 반은 흰색깃발이었다. 가슴에 이름이 적힌 흰색리본이 달린 손수건을 가슴에 차고 1학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주일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라고 해봐야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교실과 화장실 등..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인상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인상 우리세대에게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은 사회와의 첫 대면이라는 점에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나의 초등학교 생활 역시 아련하지만 절절한 기억들이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겠지만 나의 눈으로 바라본 초등학교 생활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본다. 1학년 때 기억은 입학식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반별로 다양한 색깔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내가 속한 반은 흰색깃발이었다. 가슴에 이름이 적힌 흰색리본이 달린 손수건을 가슴에 차고 1학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일주일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라고 해봐야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교실과 화장실 등등 학교.. 비아시장의 추억(수정) 비아시장의 추억(수정) 비아시장은 비아초등학교와 더불어 내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숨쉬고 있는 장소이다. 장소와 공간은 어떻게 다른가. 공간이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장소는 인간의 활동이 축적된 구체적 개념이다. 예를 들면 ‘가상공간’이라고 하지 ‘가상장소’라고는 하지 않는다. 비아시장은 비아초등학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장날이면 왁자지껄한 장의 풍경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비아장과 비아초교는 예전에는 야산 언덕이었다. 비아장이 개장한 시기는 조선말쯤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구전에 의하면 장성 황룡 신거무장이 옮겨왔다는 설이 있다. 장이 서면 장옥은 물론 주변 도로에까지 상인들이 난장을 펼친다. 장날에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들이 있다. 첫 번째가 대장간.. 이전 1 2 3 4 5 6 7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