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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돌아 왔다 딸이 돌아 왔다 딸이 돌아 왔다 서울에서 10년간 살다가 꽃화분 하나 들고 돌아왔다 통 말 수가 없던 소소한 정원에 봄비가 촉촉이 내려 나는 창문을 열어 두었다 가끔씩 기차가 풍금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딸은 그 기차를 보기 위해 슈트케이스를 들고 간이역으로 가곤했다 집에 돌아와서 슈트케이스에서 깜찍한 표정을 하고 있는 털이 희고 고운 토끼를 꺼내 놓았다 딸은 어릴적에도 상상놀이를 좋아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나이에 학교에 가고 스케치북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책가방을 메고 잠들곤 했다 지금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스케치북에 그림도 그리지 않는다 대신에 꽃화분을 들고 온다 그래서 적막강산이던 집안에는 늘 꽃이 가득하고 향기가 흐른다.
비아장에 갔던 날 비아장에 갔던 날 문득, 고향이 그리워 찾아간 비아장은 장이 서지 않는 날이라 할매도 아짐도 보이지 않았다 햇살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골목에 백년 세월을 견디느라 주름 깊어진 장옥만 간이역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장날이면 장터를 다 차고 넘쳐서 도로변까지 좌판을 펼치던 장꾼들 어디론가 떠나고, 묵은 흔적들이 하나, 둘 사위어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뚝딱뚝딱 쇠망치 소리 아련한 양철집 대장간도 어느 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빼꼼히 현대식 건물들이 둥지를 틀었다 어머니 손맛이 정겨운 팥죽집에 들어가 맨드라미꽃처럼 붉은 추억 한 그릇 마주하니 잊혀진 옛 풍경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내일 오일장이 열리면 또 다시 왁자지껄 사람들 몰려들어 덤으로 정으로 팔고 사는 시골장 인심이 흙바람 속에 넘실거리려나...
사랑이 고픈 시대 사랑이 고픈 시대, 휴대폰 벨소리마저 "사랑해" "사랑해"를 외친다 사진을 찍을 때도 하트를 날려야 한다 대중가요 노랫말이 사랑으로 넘실거리듯 일상의 모든 기호(記號)는 사랑을 품고 있다 사랑은 넘쳐나지만 사랑의 유효 기간은 짧다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는 사이에 우리의 사랑도 저만치 멀어져 있다 사랑은 짧고 기다림은 길다 그래서 "사랑해"라는 외마디 외침이 "외로워"라는 비명처럼 들린다 우리는 진정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나.
내 마음 문턱까지 왔던 그 사람 내 마음 문턱까지 왔던 그 사람 내 마음 문턱까지 왔던 그 사람 대문 밖에서 남몰래 눈빛만 마주치다가 장꽝*에 꽃 한송이 피워두고 갔네 봄이면 텃밭에 서성거리는 아지랑이처럼 가느다란 모가지를 내밀고 꽃망울 가슴에 아롱지네 여름이면 다알리아 연분홍 편지를 띄워 밤새도록 읽다가 내 마음 갈대처럼 야위었고 가을날엔 멘드라미 애타도록 붉은 사연 차마 답장도 못하고 눈물방울 촛불만 바라보았네 내 마음 문턱까지 왔던 그 사람, 겨울이면 장꽝에 핀 동백처럼 왼 종일 눈맞으며 기다렸네. *장꽝-장독대의 전라도 사투리
함평나비축제 함평나비축제 봄에는 햇살 가득한 함평천지로 가자 형형색색 꽃밭 위로 나비들의 춤사위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동굴 속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비상 하는 황금박쥐 떼 봄의 환희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축제의 땅, 함평 남녀노소 누구나 찾아와 바람과 하늘과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흥겨운 선율에 흔연히 마음을 적시는 평화로운 한나절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봄의 시어(詩語)들이 꿈틀대는 함평천지에서 한 마리 연처럼 높이 높이 꿈을 날려보자.
“전세 안 나가 새 집으로 이사 못가요” “전세 안 나가 새 집으로 이사 못가요” 광주 아파트 거래 절벽에 만기 세입자 날벼락 갭투자 아파트 세입자 ‘깡통전세’에 주의해야 고금리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거래절벽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 구입한 아파트를 두고도 이사를 가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광주시 동구 학동에 사는 김 모씨(여·60)는 2년전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전세로 계속 사는 조건으로 매각했다. 매입자는 7층짜리 건물 소유자로 시세 차익을 노린 이른바 갭(gap)투자자였다. 이 갭 투자자는 이 아파트를 포함해 광주 시내에 모두 5채의 아파트를 투자목적으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아파트는 35년이 넘은 오래된 구축이었지만 재개발 움직임이 일면서 가격이 들썩이던 시점이었다. 종전 3억 수준에서 거래..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22·끝)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22·끝) 상하이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클라라(Clala)라고 말했다. 내가 가족들 선물을 사기 위해 라파예트백화점에 가야겠다고 말하자 자기도 백화점에 갈 생각이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혼자서 심심하던 차에 뜻밖에 동행이 생겨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미모(?)의 젊은 여성이 이런 제안을 해오니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나는 뭔가 홀린 느낌으로 그녀와 함께 근처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하고 화려한 백화점 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쇼핑을 하는 사이 금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점심때가 된 것 같아 클라라에게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노천카페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21)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21) 나는 2000년 7월 아비뇽에서 파리로 돌아온 시점으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그녀와 재회를 한 셈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0년을 거슬러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다보니 어느새 차츰 날이 밝았다. 샤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기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그녀로부터 아침 식사를 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그녀의 집은 내가 머물고 있는 스튜디오로부터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식탁에는 2인분의 쌀밥과 국, 그리고 김치 등 반찬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한식을 고집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니면 내 입맛에 맞춰서 일부러 한식을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지난달에 한국에서 어머니가 쌀과 반찬을 가져오셨어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