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658) 썸네일형 리스트형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7)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7) 도시에서 있었던 일들을 테이프 되감듯이 더듬어보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이 흘렀던지 그녀가 방문을 노크했다. 새벽 기차를 타러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보았으나 시내 거리는 아직 어둠 속에 고요히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미리 정리해둔 슈트케이스를 끌고 그녀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비록 사흘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도시와 정이 들었던지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호텔과 기차역과의 거리는 걸어서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플랫폼에 잠시 기다리니 곧 기차가 다가와 멈춰 섰다. 그녀와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에 그린 베레모 모자를 쓴 그녀가 귀여운 표정으로 살짝..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6)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6) 밤늦게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짧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 파리행 열차를 타야 하므로. 프라이부르크에서 파리까지는 꽤 먼 거리이다. 정확히 몇 킬로미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말을 빌리면 3번씩이나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한 번만 갈아타는 코스도 있으나 그럴려면 대기 시간이 길어서 차라리 여러 번 갈아타는게 낫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강행군으로 인해 몸이 지쳐있었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거리며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며칠간 머물렀던 이 도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처음 기차역에서 내려서 호텔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 지나가는 역무원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는 본채만채하며 휙 사라져버린 게 마음에 걸렸..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5)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5) 프라이부르크를 떠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장막이 도시 건물들과 숲을 컴컴하게 덮어버렸다 마술처럼 도시는 짙게 화장한 여인의 얼굴처럼 딴 세상으로 변했다 우리는 조명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거리를 걷다가 맥주집에 들어가 회포를 풀기로 했다 독일에 온 여행자라면 떠나기 전에 소시지와 수제맥주를 맛보는 것이 필수이니까.... 시내 중심가에는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파는 양조장 맥주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반지하 허름한 술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흐릿한 불빛 아래 젊은이들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며 맥주잔을 들어 건배를 하였다 생맥주 맛이 일품이었다 소시지는 짠맛이 느껴졌으나 안주로서는 잘 어울렸다 그녀의 눈빛이 조명.. 합정역 5번 출구에서 합정역 5번 출구에서 박준수 벚꽃 만개한 봄날이거나 혹은 언젠가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면 합정역 5번 출구에서 그리운 사람을 기다릴 것이다 첫 눈이 내리는 날이거나 혹은 언젠가 로또에 당첨되는 날이 오면 합정역 5번 출구에서 옛 사랑을 기다릴 것이다 소나기 그치고 무지개가 뜨거나 혹은 언젠가 하늘에서 솜사탕이 함박눈처럼 내리면 합정역 5번 출구에서 그 님을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눈먼 새가 되어 아무도 알아볼 수 없다 해도 합정역 5번 출구에서 하얀 별이 스러질 때까지 긴 휘파람을 불 것이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4)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4) 다시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온 우리는 시내로 잠입해 적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지역은 보봉(Vauban)지구로 독일 제3제국 당시 독일군 병영(1932~1934)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1992년 독일통일 때까지 연합군 소속 프랑스군 5천 명이 주둔한 곳이다 그녀는 미리 가져온 지도를 바탕으로 지형과 시설물들을 하나씩 파악해나갔다 그런데 보봉지구는 독일통일과 함께 프랑스군이 철수함으로써 병영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대신 신도시로 탈바꿈해 있었다 보봉신도시는 거주인구 5천명을 목표로 1998년 착공해 2007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건설되었다 사전에 계획된 신도시답게 녹지가 충분하고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사용과 편리한 교통망, 공원 등 쾌적한 환경을..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3)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3) 우리는 도시 골목을 벗어나 흑림(black forest)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가 탄생한 장소로 유명한 흑림은 빽빽한 침엽수림 지대로 대낮에도 짙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컴컴한 밤중 같았다 그녀는 보디가드답게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수상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나무들 사이로 어스름히 비추는 햇살이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그리고 가을산의 정취와 아늑함이 기분을 들뜨게 했다 굽이굽이 숲속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가다가 외딴 마을 프라이암트에 다다랗다 그녀는 마을 입구에 작은 교회를 닮은 아담한 흰색 건물로 나를 안내했다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자 거기에는 여자 성주(mayor..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2) 가을 햇살이 호텔 창을 장미빛으로 물들 일 즈음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머릿결이 젖은 채 지난 밤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가죽점퍼 대신 하얀 블라우스와 청바지 차림으로 나팔꽃처럼 웃고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돌아다녔다 단풍이 물든 가로수 나뭇잎들이 태양빛에 꽃잎처럼 붉게 반짝거렸다 그 사이를 트램(지상전철)이 우아하게 긴 꼬리를 달고 경쾌한 신호음을 울리며 지나갔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한 아치를 지나는 트램의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는 대학 캠퍼스와 시청과 미술관을 구경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다시 전날 배회했던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골목 중간쯤에 레스토랑 겸 술집이 희미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술집 안에는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소란스..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1)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1) 박준수 그날 밤 기차는 몇 개의 국경선을 넘어 프라이부르크에 다다랐다. 도시의 광장에는 무수한 별들이 내려와 등대의 불빛처럼 반짝거리며 낯선 이국 땅에 온 나를 반겨주었다 거리는 이방의 언어가 파리 떼처럼 웅웅거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검정 가죽점퍼를 입은 그녀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나에게 암호를 보냈다 나는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프랑스 국경을 넘어왔을 것이다 내가 그 암호에 응답하자 그녀는 나의 보디가드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늦은 밤이었지만 도시의 골목을 배회했다 인적도 끊기고 상가도 문을 닫아 유령도시처럼 을씨년스러웠지만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위안이 느껴져서 긴 골목을 한참 동.. 이전 1 ··· 3 4 5 6 7 8 9 ··· 20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