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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4)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4) 우리는 오르세미술관을 나와 고풍스러운 쁘띠드빨레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이 미술관 건물은 과거 궁전이었으나 전시장으로 개조되어 활용되고 있다. 쁘띠드빨레는 프랑스어로 ‘작은궁전’이란 뜻이다. 건너편에는 ‘큰 궁전’인 그랑빨레 미술관이 마주하고 있다. 쁘띠드빨레는 이름처럼 아담하고 예쁜 미술관으로 관람객이 많지 않아 한산했다. 1층에는 잘 가꿔진 정원과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어 오르세미술관과는 분위기가 사뭇 대조적이었다. 특히 이 미술관은 과거 궁전의 컨셉을 살려서 지하 전시관을 궁전 박물관처럼 꾸며놓았다. 왕족들이 사용하던 집기와 가구를 배치해 호화스러운 궁정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관람을 마치고 1층 레스토랑에서 쉬면서 수프와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3)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3) 우리는 마레지구에서의 허전함을 뒤로 하고 시내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녀는 소르본대학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때문인지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나 역시나 미술관 관람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예전에 파리에 머무를 때 그녀와 퐁피두센터를 두 번이나 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오르세미술관으로 안내했다. 때마침 인상파 화가들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입장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20여 분 기다린 끝에 전시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르세 미술관은 과거 기차역이었다. 역으로서 기능을 잃게 되자 미술관으로 개조해 건물을 보존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기차역이었기 때문에 내부구..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2)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2) 그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파리에서 그녀와 재회한 것이다. 나는 그 추억의 현장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서 마레지구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녀의 집을 나와 다리를 건너서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은 예전과 다름없이 ‘파리의 느낌’ 그대로였다. 나폴레옹시대에 건설된 도시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들이 구획마다 비슷비슷하게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닮은꼴의 건물들이 가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그래서 이방인 혹은 여행자들이 혼자서 도시를 배회하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도 그녀의 집을 찾지 못해 여러 번 주변을 맴돌다 미아가 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상념에 잠긴 사이 버스가 마레..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1)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1)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나는 잠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 여름이었고 당시 소르본대학에서 유학중이었다. 나는 그때 파리에 출장을 왔다가 통역을 담당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첫 인상은 앳된 얼굴에 눈이 커서 청순미가 돋보였다. 특히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단정한 입술이 차분하고 신중하게 보였다. 그녀는 시테섬 건너 언덕빼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머물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 출장 기간 동안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는데, 한적한 그 언덕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언제나 노트르담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름이어서 백야 현상으로 인해 밤 10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환한 거리는 몽환적이었다. 언덕길 중간쯤에 우체국이 ..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0)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10) 그녀의 집은 ‘스튜디오’라 불리우는 일종의 원룸이었다. 파리의 주택들은 대부분 주상복합건물이다. 1층은 상가나 사무실로 사용하고 2층 이상은 주거용으로 쓰인다. 그녀가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튼이 닫힌 거실과 방이 주인을 반겼다. 실내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침대와 옷장이 고작이었다. 그녀는 오랜 여행으로 몸이 땀에 젖었는지 샤워를 하고 싶다며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불편해할까봐 창가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고 창밖 풍경을 살펴보았다. 맞은편 건물 창가에 붉은 색 꽃이 핀 화분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건물 벽 사이로 철길이 보이고 공동묘지가 절반쯤 보였다. 때때로 기차들이 덜컹거리는 소음과 함께 긴 꼬리를 끌고 지나갔다. 나는 묘비가 줄..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9)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9) 우리는 7시간의 긴 기차여행을 마치고 파리 동역에서 내렸다. 파리는 중앙역이 없고 대신에 여러 방면으로 역이 분산돼 있다. 역 광장을 나와 파리 시내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10개 묶음으로 승차권을 파는 사람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승차권을 사기 위해서는 자동판매기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묶음으로 사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판매하는 사람은 할인된 금액만큼 차익이 생겨서 이득이 되는 것이다. “묶음 승차권을 파는 사람들은 대체로 불법 이주자들이 많아요”라고 그녀가 귀뜸해주었다.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그 사람으로부터 승차권을 구입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개통된 지 100년도 훨..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8)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8) 열차가 독일 국경을 넘어 프랑스 영토로 진입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이뤄졌다. 분단국가에 살아온 나는 비행기가 아닌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김대중 정부 시절 금강산관광을 위해 유람선을 타고 국경을 넘었던 적이 있다. 강원도 고성항에서 배가 출항해 밤 사이 공해상에서 머물렀다가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북한 땅에 내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열차가 국경을 넘자 검정 베레모를 쓴 여러 명의 군인들이 총을 든 채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점점 다가오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그녀가 일러준 대로 군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차창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군인 한 명이 내게 여권을 보여줄 ..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7)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7) 도시에서 있었던 일들을 테이프 되감듯이 더듬어보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이 흘렀던지 그녀가 방문을 노크했다. 새벽 기차를 타러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바라보았으나 시내 거리는 아직 어둠 속에 고요히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미리 정리해둔 슈트케이스를 끌고 그녀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비록 사흘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도시와 정이 들었던지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호텔과 기차역과의 거리는 걸어서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플랫폼에 잠시 기다리니 곧 기차가 다가와 멈춰 섰다. 그녀와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에 그린 베레모 모자를 쓴 그녀가 귀여운 표정으로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