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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눌러 담은 새해 다짐 꾹꾹 눌러 담은 새해 다짐 박준수 벗들이여, 또 생(生)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묵은 해와 새 해의 갈피 사이 폭설이 내리고 눈밭에 남겨진 승냥이 발자국을 보면서 눈에 허리가 꺾여 부려진 나무들처럼 외로운 목울음의 메아리에 귀를 댄다 지나온 삶의 흔적들은 누구에게나 쓸쓸한 것일까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해독되지 않는 문장에 걸려서 호롱불 아래 흔들리는 생각을 붙잡느라 나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이 밤을 바람처럼 유랑한다 그리고 밤새 꾹꾹 눌러 참은 눈물은 고드름이 되어 계절의 처마 끝에 매달려 있다 새봄이 오면 푸른 보리밭 사이 사라진 승냥이 발자국을 따라 산 너머 멀어져간 울음소리를 쓸어 담으며 나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련다.
전석홍 시인, 농경사회 향수 물씬한 ‘농기구열전’ 펴내 전석홍 시인, 농경사회 향수 물씬한 ‘농기구열전’ 펴내 농기구에 얽힌 애환 70편 연작시로 풀어내 시편마다 웅숭깊은 서사…시로 엮은 농촌사 공직 은퇴 이후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전석홍 원로시인이 농경사회의 향수가 물씬한 정감어린 시집을 펴냈다. 아홉 번 째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한국 농경사회를 지탱해온 농기구를 소재로 한 ‘농기구열전’(시정시학 간행). 오로지 육체노동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어야 했던 옛날, 지게와 삽 등 농기구들은 사람과 한 몸이 되어 땅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 농기구는 오늘날 현대식 농기계로 대체되어 농업박물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옛 유산이 되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전 시인은 농촌에서 생활할 당시 농기구를 보고 다루면서 친밀한 유대감을 쌓았다..
광주문인협회 14대 회장에 이근모 시인 선출 광주문인협회 14대 회장에 이근모 시인 광주시인협회장 등 역임, 재도전 끝에 당선 영예 “봉사하는 자세로 재미있고 찾고 싶은 광주문협 만들겠다” 광주문인협회 제14대 회장에 이근모 시인(73.사진)이 선출됐다. 지난 12월 23일 광주 서구 예총 방울소리공연장에서 실시된 회장 선거에서 이 시인은 박덕은‧김석문 두 후보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3년 전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는 이 시인은 절치부심 끝에 가장 많은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광주시교육청에서 고위직 공무원으로 퇴직한 이 당선인은 그동안 광주시인협회장, 광주문인협회 부회장, 영호남문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문단 안팎에서 활발한 행보를 펼쳐왔다. 이 당선인은 새해 1월 취임해 앞으로 3..
겨울강 4 겨울강 4 며칠째 쏟아진 눈발은 강가 수풀 위에 묵상의 말씀으로 빛나고 있다 동트는 즈음, 강물은 나직한 설교를 듣느라 반쯤 졸고 있다 한 번의 기습 한파에 세상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니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모두가 한 종족이 되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 그래서 아기 예수는 한 겨울 눈과 함께 높은 곳에서 낮은 이 땅에 오셨을까 텅 빈 들판은 표정이 없고, 대신 겨울새 떼지어 날며 그들만의 축제를 벌인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려 오로지 그들만의 영토가 설원 위에 펼쳐졌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오래 전 강변을 떠나 버려진 마을 터만 남아 있다 낮은 구릉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숲과 감나무 한 그루, 그리고 묘목과 잡풀들이 하얀 화선지 위에 고즈넉이 그려져 있다 이따금 철길을 지나는 기차들이 문명의 경계선을..
눈꽃 사랑 눈꽃 사랑 눈길을 걷다가 눈에 핀 꽃을 보았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외진 골목에 민들레처럼 수줍게 웃고 있네 순수한 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보랏빛 꽃잎을 피우는지 이제야 알았네 밤새워 꽃등을 걸어놓고 눈을 맞으며 사랑은 그대를 기다리네.
겨울강 3 겨울강 3 박준수 겨울강에 가면, 각설이들 눈송이 맞으며 진창으로 몰려온다 아무도 기척 없는 허허벌판 강변에 깨진 사발들고 진격해오는 각설이 무리 어얼씨구 강둑 따라 쳐들어온다 저얼씨구 억새풀 헤치고 쳐들어온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떼죽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키 큰 나무들 척후병처럼 창을 품고 서 있고 그 사이를 까치떼 깍깍대며 긴급 타전하느라 분주하다 동학군이 떠나간 포구에 강물은 목젖이 뜨거워져 속으로 낮게 흐르고 뭉개뭉개 물안개처럼 각설이 타령 피어오른다 겨울강에 가면, 서걱대는 각설이 장단에 왼종일 귀가 먼다.
당일 우체국 택배 인기 오늘 아침 서울에 사는 아이들에게 김장김치를 보내기 위해 광산우체국에 갔다. 오전 9시에 접수가 시작되지만 우체국 후문 입구에는 훨씬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는 모습이었다. 8시50분 셔터문이 올라가고 대기하던 손님들이 1층 로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창구앞은 대합실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옛날 도깨비시장이 연상되었다. 대부분 김장김치나 고구마, 옷가지 등 가족친지에게 보내는 물품들이었다. 아마도 김장철을 맞아 자녀들에게 김치를 많이 보내는 것 같았다. 어느 손님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몰랐다"며 늦게 도착한 것을 아쉬워 했다. 우체국 직원은 택배차가 9시40분에 출발하므로 늦어도 9시20분까지는 접수창구에 도착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겨울강 2 겨울강 2 박준수 뜨거웠던 날들은 저물고 차갑게 시들어버린 빈 껍질들이 강물 위에 부스럭거린다 겨울강에는 두 개의 선율이 흐른다 낮은 음계로 목을 돋우는 강물과 높은 음으로 물살을 거슬러 노니는 물새떼, 억새 숲은 바람의 추임새에 제 몸을 맡긴다 그러나 그들은 한 곡조로 노래한다 지난 추억들이 물비늘처럼 반짝거린다 강 한가운데 낚시를 던지는 어부의 모습이 추억을 낚으려는 나의 마음을 그리는 것 같다 삶이란 때로는 범람하는 강물에 젖기도 하고 메마른 모래톱 징검다리를 건너가기도 한다 겨울강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인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지 않는 강물이여, 홀로이 아득한 제 길을 가는 나그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