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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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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 앞바다에서 칠산 앞바다에서 그대 떠나간 계절의 머리맡에 아무 기별없이 노랑 원추리꽃 피었네 수평선 저 너머 뱃고동 소리 아련히 파도 물결 따라 철썩철썩 애먼 마음 허물고 하늘을 떠도는 재갈매기 칠산에 부딪히는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져 추억에 잠긴 사람들은 저마다 검붉은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네 물때 지난 갯뻘에 붙들린 폐선 한 척 그저 닻을 내려놓고 뼈마디 스며든 묵은 사연 푸른 이끼 씻기느라 시간마저 녹슬어 버렸네 저무는 바다에서 돌아오는 건 황소바람도 재갈매기도 아닌 한 조각 젖은 가슴 때리는 파도의 애끓는 노래 붉게 물드는 칠산에서 남몰래 듣고 있었네.
코로나 시대 사랑법 코로나 시대 사랑법 지난 봄은 비상계엄령이 내려진듯 온 세상이 오싹 얼어 붙었다 봄축제를 기다리던 벚꽃, 진달래도 통금에 발이 묶여 시무룩하게 들길을 서성거렸다 상춘객들은 검문소 경계선 밖에서 애타게 꽃들을 불러 본다 매화야, 목련아........ 생기없는 꽃들은 조화처럼 굳어버렸다 제 홀로 바람만이 무선 와이파이처럼 마스크로 얼굴을 숨긴 익명의 눈빛들 사이로 꽃잎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주었다 ‘거리두기’가 일상이 돼버린 코로나 시대 꽃도 사람도 언택트(비대면)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다 황달처럼 외로운 밤, 젖은 가슴의 언어는 수화로는 다 표현되지 못한다 가로등 불빛 희미한 골목길에서 그녀와 딥키스로 사랑을 나누던 시절이 그리웁다 코로나 시대에도 사랑법은 여전히 ‘가까이’, 그리고 ‘마주하기’이다.
섬진강 은어 섬진강 은어 산빛 그림자 그렁그렁 흐르는 해질녘 섬진강에서 그리운 그대 눈빛을 보았네 물굽이 나직이 돌아가는 산 허리춤 갈대 깃발 나부끼는 바람 따라 밤하늘 별빛처럼 반짝 반짝 빛나는 은어(銀魚)떼 물비늘 강물 깊숙이 숨쉬는 생명의 숨결인가 지난 계절 강나루 흘러간 매화꽃 가쁜 사연을 흐렁흐렁 풀어내는 내밀한 은어(隱語)인가 물이 고요 속으로 한음계 몸을 낮출 때 퍼득이는 은빛 춤사위는 섬진강을 나그네의 마음 속으로 끌어당기네.
장미꽃이 핀 추억 너머 장미꽃이 핀 추억 너머 빈민촌 주택가 철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의 지축을 흔드는 장미꽃을 보았다 반짝이는 레일위로 부드러운 바람이 덜컹덜컹 불어올 때 마치 기적소리가 울릴 것만 같은 헝클어진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웃음 띤 액자 속 풍경이 오랜 사진첩에서 꺼내어져 제자리로 회귀되고 있었다 나는 차마 그 수려한 오후의 시간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쓴 편지는 아직 당도하지 않았고 기적소리가 아득히 밑줄을 긋고 지나갔다.
꽃은 질 때도 화사하다 꽃은 질 때도 화사하다 겨울 눈보라 속 앙상한 가지에 눈을 뜨고 먼 귀 열어 만나야 할 사랑 하나 있으니 바람이 길을 묻거든 저기에 꽃 대신 가시덤불이 있다고 말해주오 황톳길 대신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있다고 전해주오 그래도 돌아와 길을 묻거든 그저 바위 귀퉁이 한 켠에 꽃등이 기..
봄의 불길에 눈물을 사르고 봄의 불길에 눈물을 사르고 봄, 황달 환자처럼 외로움을 달이던 너는 눈물이었다 겨우내 칼바람 맞으며 매화나무 자국마다 붉게 움튼 피톨 강가 언덕에 개나리 금싸라기 퍼부어놓고 산기슭마다 진달래 불 지펴 내 마음 한구석 괸 슬픔을 사르던 너는 눈물이었다.
봄비 봄비 누군가 오고 있다 희미한 추억을 담배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워내며 야윈 산허리를 돌아 백마의 갈기 같은 눈웃음 지으며 개여울 징검다리를 건너 실낱같은 설레임 나막신 딸각이는 소리 느린 듯 빠른 듯 마음의 창에 다가와 하염없이 들려주는 옛 시절 이야기 대지에 속삭이는 낭송..
사직공원 가는 길 사직공원 가는 길 소나무 등걸 같은 세월을 안고 추억 어린 바람꽃 군데군데 피어난 사직공원 가는 길 비둘기 머물다간 비탈길 따라 봄이 저만치 허리춤을 추켜올릴 즈음 환하게 마중 나온 목련 한그루 소담한 찻집 창 너머로 빛바랜 풍경을 헤집고 빈집 마당가에 홀로 볕을 쬐는 고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