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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同行 막내 아들과 금당산에 오르다 보면 유년의 그리운 풍경 하나 가슴에 맺힌다. 어린 시절 할머니를 앞서 갔던 나처럼 산길을 달려가는 막내아들 녀석은 아빠와 산행이 즐거워서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저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금당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등 너머로 아득한 길 하나 뻗어 있다 뿌연 흙먼지 이는 황톳길 수레를 끄는 모습이 가물거린다 한때는 큰 산처럼 가까웁던 등허리 녹음 우거지던 그 길이 이제 모래뿐인 사막 새들도 냇물도 흐르지 않아 바람에 야윈 발자국 지워지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길을 나선 낙..
억지 억지 살다보면 어느 순간 억지를 부리고 있는 나를 본다 떼쓰는 아이처럼 욕심쟁이 마음으로 세상에 투정을 부린다 설익은 생각으로 시를 쓰고 허투른 꿈을 꾸며 각오를 다진다 때로는 허공에 주먹을 던지며 울부짖는다 세상이 그렇게 억지부린다고 되는 일 있나 봄에 피는 꽃들이 어디 ..
봄비 오는 날 봄비 오는날 봄비 오는 날 강릉행 기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간다 그곳에서 첫사랑 닮은 여인을 만나 막걸리집에서 첫사랑을 얘기한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그녀는 이 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꿈속에서 추억의 거리를 걷고 있을까 아득히 먼 이국땅에서 바다 너머 고향의 사연..
해남 화원에서 해남 화원에서 겨우내 끊긴 소식이 궁금했다 그 바다에는 누구도 그물 하나 치지 않고 바람이 혼자서 조각배에 머물다 갔다 그렇게 겨울 석달간 끙끙 앓으며 드러누운 늙은 어부 바다도 소식이 궁금했는지 오늘은 붉은 동백꽃 한송이 피워냈다 거친 갯바람도 숨을 죽이고 물오른 개나리 ..
늙은 감나무 한 그루 늙은 감나무 집터 한구석에 홀로 남은 늙은 감나무 오갈 데 없는 철거민처럼 위태롭게 서 있네. 생의 뒤안이 그렇듯 흘러간 시간의 저편에 남은 건 흉터 자국난 추억 몇 그루 낡은 기와지붕 아래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저녁 연기 풍금소리 울려 퍼지던 문간방 첫눈 내리는 밤 은은하던 촛..
시가 고픈 날 시가 고픈 날 춥고 배고픈 날 빵 대신 시를 쓴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선택할 때 시인은 배고프다며 상대를 가라고 권하셨지만 나는 상대에서 경제학 공부 대신 시를 썼다 레포트 내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고 다음날 학보사에 시 원고를 투고했다 그러나 시는 지면에..
3월의 거리는 수상하다 3월의 거리는 수상하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지점 3월의 거리는 수상하다 겨울공화국과 서울의 봄이 팽팽히 마주 한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 깜박거리는 신호등이 수상하다 어딘 듯 일촉즉발 터질 것 같은 고요함, 외로움에 번져나는 눈물 한줄기 치통을 앓은 나는 이를 악물고 3월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