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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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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친구 시인 친구 신안 압해도 선돌 마을에 시인 친구가 살고 있다 갈매기처럼 육지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해풍 부는 이곳에 귀촌해 흙집에 글방을 차렸다 낮에는 초등학교 사서로 밤에는 시인으로 밀물과 썰물이 되어 섬을 지키고 있다 젊은 날 그의 삶은 주간지 기자로, 학원 강사로 도시 한 켠..
관습처럼 관습처럼 일상에는 어딘가 덫이 숨어 있다 관습의 익숙함 같은 낯익은 얼굴로 부드러운 악수를 건넨다 이미 치밀하게 계산된 미소와 마음을 파고드는 샤넬 향수 거기에는 의식을 마비시키는 성분이 있다 오뉴월 장미처럼 겉은 화려하고 길고양이처럼 발톱을 숨기고 있는 다정다감한 눈..
장성 남창계곡에서 장성 남창계곡에서 숲 속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마음 한 굽이만 살짝 꺾으면 나리꽃 피는 언덕길 보인다 경계 밖에 살다보면 매양 다녔던 길만 훤히 보이고 비켜있는 산속 길 부옇게 안개속이다 오늘은 바람을 만나 길을 나선다 예전에 다녀갔던 그 길을 따라 세월에 빛바랜 추억..
진군나팔을 불어라 진군나팔을 불어라 인생은 용기가 필요하다 제 살점을 도려내는 단절의 용기 손에 쥔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 검정고시 공부를 위해 다니던 공장을 그만 두었을 때 막막하고 두려웠다 주변에선 공부가 그리 쉬운 일이냐고 걱정 반 핀잔 반 눈총을 주었다 그리고 대학졸업후 다니던 회사..
장인 어르신 떠나신 날 장인 어르신 떠나신 날 소리 없이 안개비가 4월 들판을 적시던 날 한 많은 세월이 홀연 강나루를 건너는 이승의 끝에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어 추억으로 인화하는 원추리 꽃 작은 몸속으로 밥 한 톨 넘기지 못하는 정지된 시간, 몸 밖으로 나와 안개비 따라 젖은 듯 젖지 않은 듯 살아온 인..
방촌(房村) 방촌(房村) 방(房)은 생각보다 넓다 서너 평 공간에 윗목 아랫목이 존재하고 네 귀퉁이마다 공기의 결이 다르다 구석에 냉기가 서로 서로 살을 부비며 낮은 곳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구 밑에는 머리카락이 엉켜 은밀한 새집을 짓는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햇빛이 슬금슬금 졸음에 겨운 ..
봄에 내리는 눈 봄에 내리는 눈 매화꽃 지천으로 피는 삼월 산마루에 눈꽃이 하얗게, 하얗게 피었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목련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저만치 달려오던 벚꽃도 잠시 멈춰선 봄날 아침 계절이 다시 한발짝 뒷걸음쳐 하얀 손수건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네 춘설이 뒤덮은 세상은 봄인가..
발산마을 박물관 옛집 -발산마을 박물관 작은 몸집에 홑겹으로 주름진 흙집 호롱불이 어른거리던 창호지 너머 살아온 내력이 벽지에 무늬진 저녁 아궁이에 피어나는 따스한 그으름 낮게 핀 민들레 꽃처럼 다정한 웃음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번져가던 흙집의 기억 골목길 어귀에 선 오래된 나무, 그리움의 ..